"그는 IMF 외환 위기 때 한국 경제를 살린 거인이었습니다. 요즘 같은 위기 상황에 떠나가서 너무 안타까워요."

지난 31일 지병으로 별세한 강봉균(74) 전 재정경제부 장관의 빈소에는 1일 각계 인사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진념 전 경제부총리는 경제기획원 6년 후배인 강 전 장관에 대해 "소신 있고 바른말 잘하는 사람"이라며 "국민을 편하고 행복하게 하는 게 바로 경제라고 강조하던 그 모습이 선하다"고 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는 외환 위기 시절 강 전 장관을 떠올리며 "구조 조정을 할 때 여러 기업으로부터 청탁을 받았지만 한 번도 굴하지 않았다"며 "김대중 대통령과 토론할 때도 절대 굽히는 법이 없었다"고 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군산사범학교 출신인 강 전 장관에 대해 "선생님을 했으면 벌써 학교에서 쫓겨났겠지만 경제수석, 장관으로는 참 소신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1일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강봉균 전 재경부 장관 빈소에서 조문객들이 묵념하고 있다. IMF 외환 위기 극복에 앞장섰던 강 전 장관을 기리는 애도 발길이 이어졌다.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은 "여야를 떠나 나라 경제 걱정하는 마음은 한결같았던 분"이라고 했고,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복잡한 사안을 원만하게 정리하는 능력이 탁월하신 분"이라고 했다.

이 외에도 정세균 국회의장, 이규성 전 재정경제부장관, 전윤철 전 감사원장, 윤증현·현오석·최경환 전 기획재정부장관, 조원동 전 경제수석,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 안철수 국민의당 의원 등이 빈소를 찾았다. 재계에선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허진수 GS칼텍스 회장 등이 그를 기렸다.

이날 빈소에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 한광옥 청와대 비서실장, 각 당대표 등이 보낸 조화(弔花)가 놓였다.

강 전 장관은 2014년 췌담도암 수술을 받은 이후 잠깐 차도를 보였지만 작년 11월쯤부터 다시 병세가 악화했다고 한다.

그의 마지막 공식 일정은 작년 11월 30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외환 위기의 파고를 넘어'라는 책 발간 행사였다. 강 전 장관을 비롯해 외환 위기를 극복한 주역들의 육성을 담은 책이다. 입원 중이었던 그는 주변 사람들이 말렸지만 "어떤 일이 있어도 가야 한다"며 이 자리에 참석했다.

유족은 강 전 장관 유언에 따라 이 책을 입관 때 고인 곁에 두기로 했다.

강 전 장관은 1969년 행정고시(6회)에 합격해 공직에 입문했다. 경제기획원 시절 아이디어가 많아 '꾀주머니'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김영삼 정부 시절 정보통신부 장관을 맡아 '정보화 전도사'로 불렸고 김대중 정부에선 청와대 경제수석, 재정경제부장관을 맡아 외환 위기 극복에 기여했다. 2002년 보궐선거 때 고향인 군산에서 새천년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해 정계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 16, 17, 18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의 경제 공약을 짰다.

그는 지난해 총선 때 새누리당의 공동선대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총선 참패 이후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TV도 안 봤다고 측근들은 전했다. 친구 사이인 이수영 OCI 회장은 "강 전 장관은 국회의원을 했지만 정치인이 아니라 나라 걱정하는 사람이었다"고 했다. 나라 경제에 대한 걱정은 병석에서도 여전했다고 한다. 강 전 장관의 한 측근은 "강 전 장관이 '외환 위기는 단기적인 위기였지만 최근 상황은 구조적인 데다 정치 문제와 섞여 있어 더 풀기 어렵다. 이럴 때일수록 각자가 자기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발인은 3일. 유족은 부인 서혜원(71) 여사와 아들 문선(43), 딸 보영(42)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