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률 서강대 MOT대학원 교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지난 연말이다.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바쁜 세밑, 왕복 하루가 꼬박 걸리는 지방에까지 오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뒤늦게 알게 된 지인들이 죄인을 만들었다고 원망한다. 부친상만큼은 알리는 게 도리라고 했다. 그런 원망을 들으면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아버지와 유난히 친했다. 평생 싫은 소리를 안 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며느리들에게까지 인기가 좋았다. 그런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늘 원망과 한숨의 대상이었다. 나는 안다. 살아오면서 온갖 궂은일은 어머니 몫이었다. 유산 갈등에서도 아버지는 당신의 형제에게 대폭 양보했다. "장남이 책임만 지고 권리를 포기했다"며 어머니는 두고두고 원망하셨다. 일평생 샌님처럼 곱게 살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는 요즈음 통 잠을 이루지 못한다.

아버지의 무게는 컸다. 해마다 명절엔 부자지간 산행을 나섰다. 막걸리라도 한잔 걸치면 무척 행복해 하셨다. 몇 년 전 힘에 부쳐 산행 중단을 선언했을 때 우리 형제는 할 말을 잊었다. 영원한 이별이 가까워 왔음을 눈치 챈 것이다. 아버지는 당신의 몸을 소진시켜 우리를 키워내셨다. 일과도 바뀌었다. 마당 잔디는 걷히고 고추 묘목이 대신했다. 우렁찬 자목련은 고추밭에 그늘이 진다는 이유로 싹둑 잘렸다. 우리가 불평이라도 하려 치면 가만히 응답했다. "세월이 답이다. 늙어봐라. 꽃보다도 고추·상추 키우는 재미가 더 쏠쏠하다."

뜨거운 불이 들어가는 것을 오열 속에 지켜보길 두어 시간, 유골함이 전해졌다. 당신의 마지막을 담은 상자는 놀랍도록 가벼웠다. 선산으로 가는 길, 내 몸에 전해지는 유골함의 따뜻함에 진저리쳤다. 천붕(天崩)이라고 하는 이유를 비로소 알았다. 잠을 설친 새벽,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손에 쥔다. 학창 시절 의미도 모르고 읽었던 책이 왜 위대한 고전인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황제가 그토록 강조했던 진리를 아버지의 죽음으로 오늘 문득 깨달았다. 우리 모두 언젠가 빈손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수의에는 주머니조차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