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을 열어젖힌 소설의 화두는 말[言]이었다. 동인문학상 심사위원회(김화영·김인환·오정희·정과리·구효서·이승우)는 지난 24일 1월 심사독회를 열어 서준환(47)의 단편집 '다음 세기 그루브'(문학과지성사), 양진채(51)의 장편 '변사 기담'(강)을 2017년 동인문학상 본심 후보작으로 올렸다. 전혀 상반된 성격의 두 소설은 그러나 모두 '말'을 중심 제재로 서사를 이끌어나간다.

'다음 세기 그루브'는 일곱 편의 단편을 묶은 자기독백적 소설집이다. 불교철학·천체물리학·음향학 등 각종 용어의 범람을 통해 의식적 혼란을 야기하는 이 소설집은 말의 자아를 고민한 '파라노이드 안드로이드'와 새로운 언어의 가능성을 제안하는 표제작 '다음 세기 그루브'에 이르기까지 불친절한 일방적 진술로 가득하다. 특별한 스토리나 소설적 장치 없이 1인칭 화자의 입에 의존하는 소설을 통해 작가는 아예 "나는 말한다, 고로 존재한다"고까지 주장하는 것이다. 심사위원 사이에선 "소설적 상황은 최소화한 뒤 자기 할 말을 마구 우겨넣는 느낌"이라거나 "'다시 말하면' '알다시피' 같은 췌사가 너무 많아 읽기 싫어진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럼에도 "자아 상실 이후 주어를 찾아가는 동사의 움직임을 그려내는 특이함"이라거나 "조직화된 사회의 유일한 탈출법으로서 나 이외의 말을 모두 소음으로 만들어버리는 인상적 시도"라는 호평이 앞섰다.

서준환, 양진채

반면 200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양씨의 첫 장편 '변사 기담'은 술술 읽힌다. "가독성이 뛰어나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일제강점기 인천을 배경으로 변사(辯士) 기담과 조국 독립에 뛰어든 그의 연인인 기생 묘화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액자식 소설이다. 말이 존재의 전부였던 기담은 독립운동 가담 혐의로 혀가 잘린다. "스토리에 독립운동과 공공선을 끼워넣는 과욕"이라는 지적도 나왔지만 "변사의 말솜씨를 통해 한 시대를 복원하는 솜씨가 탁월하다"는 칭찬이 압도적이었다. 서술 과정에서 저자의 고향 인천에 대한 애정에서 기인한 꼼꼼한 취재가 빛을 발한다. 한 심사위원은 "변사와 영화를 통해 당시 이 땅의 사람들이 얼마나 열심히 근대를 받아들이기 위해 애썼는지를 보여준다는 점도 높이 살 만하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이 밖에도 강희진·명지현·오한기 등이 논의됐으나 관문을 넘지 못했다. 본심 진출자는 지난 1차 독회를 통과한 강영숙·백수린·최수철에 이어 5명으로 늘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