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6년 임기를 마치고 오늘 퇴임한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여러 현실적 여건을 고려해 후임자를 지명할 계획이 없다 한다. 이로써 헌재의 대통령 탄핵 심판이 9명 재판관 정수(定數)가 아닌 8명 체제로 진행되게 됐다. 오는 3월 13일엔 이정미 재판관이 물러날 예정이어서 곧 7명이 된다. 대통령 탄핵 심판은 정수와 관계없이 6명 이상의 재판관이 동의해야 인용된다.

황 대행이 박 소장 후임자를 지명하지 않기로 한 것은 그럴 권한이 있느냐는 법적 논란보다는 정치적 반발을 염두에 둔 것이라 할 수 있다. 박 소장은 대통령이 지명한 사람이다. 이 경우는 국회 인준투표(과반) 대상이다. 지금 민주당·국민의당은 물론 바른정당까지 황 대행이 지명하는 자체를 반대하고 있어 후임을 내놓아 봐야 분란만 일어날 뿐 통과가 불가능하다. 이 비상시국에 헌재마저 비정상이 불가피하다는 뜻이다.

이정미 재판관은 대법원장이 지명한 사람이다. 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후임을 지명하는 데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야당들이 청문회 자체를 보이콧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헌재법은 재판관이 7명 이상일 때만 심리를 할 수 있도록 정해놓고 있다. 만약 이정미 재판관 후임을 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예상치 못한 일로 궐석이 또 생기면 헌재 자체가 완전 마비되는 사태가 벌어진다. 최근 새누리당 일각에선 황교안 총리를 대선 후보로 내세우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한다. 만약 이것이 현실화되면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대행이 나와야 할 판이다. 헌재도 이정미 재판관이 내일부터 소장 권한대행이지만 3월 13일 이후에는 또 권한대행을 뽑을 수밖에 없다. 국가의 핵심 위치들이 공석(空席), 권한대행으로 하나둘씩 바뀌고 있는 것 자체가 이 상황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조기 대선이 치러진다면 앞으로 국가가 표면적으로나마 정상화되는 데 5~6개월은 걸릴 것이다. 탄핵이 기각되면 그로 인한 혼란이 또 얼마나 갈지 모른다. 국가 체제는 최악의 사태를 가정해 수립되고 운영돼야 한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은 '설마' 하는 요행수를 바라고 나라의 기둥에 생긴 커다란 구멍조차 못 본 척 그냥 가자고 한다. 어디서 또 큰 구멍이 날지 모른다. 나라 전체를 좌우할지도 모를 도박이 별일 아닌 듯 진행되고 있다. 이 위험성에 경각심을 가진 정당 하나도 없다. 국민이라도 눈을 부릅뜨고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