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석 미래기획부 차장

올해 다보스포럼은 여러 면에서 예년과 달랐다. 지난해만 해도 4차 산업혁명 등 혁신이 주요 이슈였지만, 이번엔 포퓰리즘과 정치 리더십 부재, 보호무역주의 등 우울한 이야기들이 톱뉴스를 장식했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인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는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이긴 것은 전통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하던 미국 사회의 하위 25% 계층이 포퓰리즘 성향을 보인 공화당의 트럼프 지지로 돌아섰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민주국가의 엘리트들이 분노한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선거는 포퓰리즘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남의 얘기가 아니었다.

알파고를 만든 데미스 허사비스는 기자에게 "바둑 천재 이세돌을 꺾은 알파고는 구글 전체 인공지능(AI) 사업 계획의 10%도 안 된다"면서 "앞으로 AI를 첨단 과학 연구에 투입해 노벨상 받을 수 있는 획기적 발견을 매우 손쉽게 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우리가 AI에 대해 막연한 예측만 하고 있는 사이 허사비스는 AI를 통해 세상을 통째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구글이 매주 노벨상에 버금가는 첨단 과학 발견을 한다고 상상해보니 아찔했다.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 참석 등을 위해 15일(현지시각) 스위스를 국빈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이 베른의 연방의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다보스포럼 연사들은 앞다퉈 미래를 전망하고, 참석자들은 그런 미래를 대응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그래서일까. 다보스에서 본 국내 상황은 더 암담해 보였다. 정치인들은 사회 정의가 중요하다고 피 토하는 심정으로 말한다면서도 20~30년 뒤 한국이 먹고살 산업에 대해 말하는 이는 없다. 국제사회에서는 힘이 곧 정의인데, 우리끼리만의 우물 안 사회 정의에 매몰돼 미래에 대비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는 건 아닌지 걱정됐다. 게다가 기술도 없고 실력도 없는데 오로지 내 권한만 강조하고 책임은 안 지려는 풍조, 법 위에 정서법이 있고 그 위에 떼법이 있는 사회다. 좌파니 우파니, 종북이니 반북이니, 친일이니 반미니 하며 네 편 내 편 갈라 분열한다. 이래서는 중국에 치이고 일본에 치인다. 국가가 없는데 네 편 내 편이 무슨 소용 있나? 우리나라가 진짜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20여 명에 불과했던 우리나라 참석자들은 한한령(限韓令) 등 중국의 사드 관련 조치들이나 일본의 위안부 문제에 대해 우리의 입장을 열심히 피력했다. 그러나 아무도 들어주려 하지 않았다. 분명 우리가 정의로운데, 우리의 정의를 알아주지 않았다.

한 참석자는 "중국이나 일본보다 힘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런 인식이 푸념으로만 끝나선 안 된다. 우리가 살아남을 길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답은 하나다. 중국이나 일본 국민이 우리 드라마를 더 많이 안 보고는 못 배기게 하고, 우리 제품을 안 사고는 못 배기게 하는 것만이 우리가 살 길이다. 영어·중국어·일본어 한 단어라도 더 외우고 우리만의 기술을 더욱더 발전시켜 대한민국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그래서 우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되도록 해야 한다. 우리의 실력이 세계적인 수준에 오를 때까지 우리는 앞만 보고 달려가야 할 때다. 20년 후 지금을 되돌아보면서 우리 사회가 주창한 사회 정의가 국제사회에서 아무 의미 없게 되지 않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