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 특별검사팀은 22일 이른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소환 조사했다. 두 사람은 21일 새벽 구속됐다. 특검팀은 두 사람을 21일 오후에도 소환했으나 김 전 실장은 '몸이 좋지 않다'며 불응해 조 전 장관만 조사를 받았다. 특검팀은 23일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을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할 예정이다.

김 전 실장은 현 정권에 비판적 성향의 문화·예술인들의 리스트를 만들어 이들에게 정부 지원을 끊도록 정무수석실에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조 전 장관은 정무수석 시절 리스트를 직접 만드는 데 관여한 혐의다.

김기춘(왼쪽) 전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이 22일 특검 사무실에 출두하고 있다. 두 사람은 상의 왼쪽 가슴에 수용자 번호가 적힌 배지를 달았다.

특검팀은 이들에 앞서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신동철·정관주 전 국민소통비서관도 구속했다. 블랙리스트 문제로 5명을 구속한 것이다. 이 중 신동철·정관주 전 비서관은 정무수석실에서 리스트를 직접 만든 혐의를 받았고, 김종덕 전 장관은 청와대가 만든 리스트를 예술정책실 등 실무 부서에 넘겨 실행하면서 진행 상황을 김 전 실장에게 보고한 혐의를 받고 있다. 특검 수사와 법원의 영장 발부를 통해 김기춘→정무수석실→문체부로 이어지는 블랙리스트 작성·유통·실행 과정이 드러난 셈이다.

이제 특검팀의 수사는 박 대통령을 직접 겨냥하고 있다. 특검팀은 박 대통령을 상대로 블랙리스트 개입 혐의를 조사하겠다는 방침을 밝혀 왔다. 특검팀은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의 구속영장에 박 대통령이 블랙리스트 문제에 개입한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을 포함시키기도 했다.

[박 대통령 측 "블랙리스트 지시한 적 없어… 법적 대응 할 것"]

특검팀 관계자는 "아무 이유 없이 조사할 수는 없는 것"이라며 "블랙리스트 수사는 막바지 단계에 와 있다"고 했다.

고(故)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업무일지(비망록)에는 '문화·예술계 좌파의 각종 책동에 투쟁적으로 대응' '(박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풍자한 홍성담 작가에 대해) 배제 노력, 제재 조치 강구'라는 메모가 적혀 있다. 김기춘 전 실장의 지시를 받아 적은 내용이다.

그러나 특검팀은 이 같은 지시가 김 전 실장이 독단적으로 한 것이라기보다는 박 대통령의 뜻에 따른 것이거나 적어도 박 대통령에게 사후(事後)에 보고됐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특검팀은 조원동 전 경제수석이 CJ 손경식 회장에게 'VIP(박 대통령)의 뜻'을 거론하며 이미경 부회장을 사퇴시키도록 압박한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벌어진 일로 보고 있다. 또 박 대통령이 맨 부커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에게 축전을 보내지 않은 것 등도 한강이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기 때문이 아니냐는 것이 특검팀의 시각이다. 문체부 관계자들은 특검에서 "청와대가 'VIP의 특명'이라며 2014년 14억원 규모였던 부산국제영화제 예산을 2015년 8억원으로 줄이도록 지시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 측이 21일 특검 관계자와 일부 언론사를 고소키로 한것은 특검의'블랙리스트 수사'를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직권남용죄

공무원이 주어진 권한을 넘어서서 다른 사람에게 할 의무가 없는 일을 하도록 했을 때 적용된다. 5년 이하의 징역형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처벌한다. 박 대통령 등은 문체부가 반정부 성향의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지원을 끊도록(의무 없는 일을 하도록) 압박했다는 것이 특검팀의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