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관가(官街)에선 최근 ‘좋은 상사(上司)’의 기준을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기획재정부 직원들이 ‘닮고 싶은 상사’를 뽑은 것이 기폭제가 됐다. 일반 기업에 비해 상명하복 문화의 색채가 짙게 남아 있는 공직 사회에도 변화 바람이 불고 있는 중이다.

기재부 노동조합은 2004년부터 연말마다 과장급 미만 직원 600여명의 투표를 통해 ‘닮고 싶은 상사’와 ‘닮고 싶지 않은 상사’를 뽑고 있다. 이번엔 국장급 이상 5명과 과장급 11명이 ‘베스트(best) 상사’, 과장급 이상 5명은 ‘워스트(worst) 상사’로 뽑혔다.

닮고 싶은 상사로 꼽힌 한 국장급 간부는 “일할 땐 짜증내지 않고, 회식 자리에선 술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기본 상식’을 지키고 있다”고 했다.

또 다른 ‘베스트 상사’는 “후배들에겐 ‘쓸데없이 야근 말고 업무 시간에 집중해서 끝내자’고 한다”며 “퇴근 시간 후 업무 보고를 받지 않는 걸 원칙으로 하니 좋아하는 것 같다”고 했다.

워스트 상사로 선정된 간부들은 이들과는 반대로 후배들을 대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회식을 자주 하고, 보고서를 자주 퇴짜 놓고, 퇴근 이후 업무 지시를 하는 상사들이다.

기재부 투표 결과에 대해 세종시 다른 부처 공무원들은 “워스트 상사를 발표하는 기재부 직원들이 부럽다”거나 “통쾌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30대 사무관 P씨는 “얼마 전 공무원 워킹맘이 과로사할 정도로 세종시 대다수 사무관은 열심히 일하는데, 별것 아닌 일로 ‘서울대 출신인데 그 정도 밖에 못하느냐’는 상사들의 지적을 듣다 보면 울컥할 때가 많다”고 했다.

경제 부처 한 사무관은 "일찍 퇴근하면 찍힐까 봐 야근하는데, 자정이 다 돼 청사 근처 술집으로 불러내는 상사도 있다"며 "불러주면 좋아할 거라 생각하는 모양인데, 열에 아홉은 아니다"고 했다.
반면, 과장급 이상 공무원들 사이에선 반론도 만만치 않다.

“공직 사회의 권위주의적인 문화는 바꿔야 하지만 업무만큼은 확실히 해야 하니 혼을 내서라도 일을 제대로 가르치려는 상사가 좋은 상사”라는 말이 나온다. 기재부의 한 국장급 간부는 “받아보면 한숨만 나오는 보고서가 올라와도 후배들 무서워 쓴소리 못 하고 국장이 직접 고치는 게 과연 정상적인 조직 문화라고 생각하느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