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포메이션|제임스 글릭 지음|박래선·김태훈 옮김|동아시아|656쪽|2만5000원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는 인간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를 묻는 담대한 질문이었다. 수렵 채집을 하던 변방의 유인원이 인지·농업·과학 혁명을 거쳐 진화의 노를 젓고 있다는 문명 항해기. 하지만 이 질문의 전제는 '인간'이었다. 만약 우주의 주인이 사피엔스가 아니라면. 실제로 그렇지 않은가. 기껏해야 지구의 현 단계 지배종일 뿐, 사피엔스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우주는 진화의 두 바퀴를 굴리고 있다.

'카오스'(2008)로 대중 과학서 저자의 입지를 다진 뉴욕타임스 과학 기자 출신의 제임스 글릭(63)은 새로운 주인공을 내세워 배짱 두둑한 항해기를 써내려간다. 주인공의 이름은 인포메이션(Information). 정보라고 번역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 여기서 인포메이션은 단순히 컴퓨터 데이터나 편지에 담긴 메시지를 훌쩍 넘어선다. 우주가 존재하는 궁극적 모습이랄까. 옛 아프리카인의 북소리와 스마트폰 문자 메시지,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과 리처드 도킨스의 '밈(meme)' 이론까지 통합하는 어마어마한 빅 히스토리다.

우선 '말하는 북' 이야기부터. 1832년 서아프리카 니제르강을 탐사하던 영국 선장 윌리엄 앨런은 카메룬 출신 항해사의 특이한 행동을 발견한다. '정신 차리라' 야단치는 선장에게 아프리카인 항해사는 말한다. "북이 내게 갑판에 올라오라고 말했어요. 내 아들이 말하는 게 안 들리나요?"

아프리카의 북은 서양의 어떤 여행자보다도 빠른 원거리 통신 기술이었다. 도로와 역참, 최고의 파발마와 전령까지도 앞지르는 전달 체계. 그러면서도 내용의 구체성은 봉화(烽火)를 능가한다. 비교하자면 모스 부호 수준. 콩고에서 아이가 태어나면 치는 북소리를 예로 들어본다. "거적들이 둘둘 말리고, 우리는 힘이 솟네. 한 여인이 숲에서 나와 탁 트인 마을에 있네. 이번에는 이걸로 족하다네."

우주의 주인은 호모 사피엔스가 아니라 인포메이션, 정보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이 새 주인은 어느 바다로 항해를 계속할 것인가.

비결은 성조(聲調), 그리고 '비효율적 잉여성'에 있었다. 등락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성조 언어야 그렇다 치고 왜 '닭'이 아니고 '꼬끼오 하고 우는 작은 것'이라 북을 쳐야 하는가. 정답은 오류 수정. 모든 단어는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가능성 때문에 모호해지지만, 이런 잉여가 역설적으로 명료한 의미를 만든다. 현대 데이터 정보 공학에서 '명료화와 오류 수정을 위해 추가 비트(bit)를 할당하라'는 명제와 일맥상통하는 고대의 실천 사례다.

이런 식이다. 제임스 글릭의 박람강기(博覽强記)는 북소리·상형문자·전신·컴퓨터를 키워드로, 학문 영역에서는 언어·심리·생물·물리·통신·엔트로피·양자역학을 넘나들고, 인물로 따지면 괴델·앨런 튜링·비트겐슈타인·리처드 도킨스·클로드 섀넌을 가로지른다. 모두가 하나의 장(章)을 차지하고 있는 주인공이자 정보의 역사와 이론이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서사의 핵심 엔진들이다.

토머스 프리드먼은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에서 급변하는 미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직업 두 가지는 전략가와 저널리스트라고 말한 적이 있다. 전략가는 변화하는 세계를 만들어가고, 저널리스트는 그 세계를 쉽고 정확하게 전달할 책임이 있다는 것. 하버드대학에서 문학과 언어학을 전공하고 신문사에서는 과학을 담당했던 글릭이야말로 그 임무에 어울리는 인물일 것이다.

물론 참과 거짓을 증명할 수 없는 명제가 존재한다는 내용을 중심으로 하는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 또 정보의 세계에서 늘 질서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무작위성의 감각' 등의 현대 과학 이론들은 여전히 버거운 도전이다. 글릭 역시 전문 독자를 넘어 대중에게까지 100% 자신의 임무를 완수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모든 이론의 장애물을 어떻게든 돌파하고 나면 우리는 이 과학 저널리스트가 안내하는 어떤 결론에 도착하게 된다.

사피엔스가 정보에 접속하는 방식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고 있지만, 인포메이션 그 자체는 자신만의 질서와 문법으로 진화하고 증식하며 팽창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하나 더. '정보의 홍수'다. 전에 없이 복잡해지고, 거리감이 생기고, 두렵도록 과도하다. 너무 많은 정보를 접하면서 우리는 '회로의 과부하'로 고통받는다.

정보 과잉에 지친 현대인은 큐레이션 서비스를 원한다. 하지만 이전이라고 달랐을까. 필터와 검색은 늘 있어 왔다는 게 글릭의 분석이다. 알파벳순 색인, 서평, 백과사전, 선집과 요약집, 인용집과 용어 색인, 지명 사전 같은 선택과 분류의 메커니즘은 어느 시대, 어느 지역에나 있었다는 것.

아르헨티나 작가 보르헤스(1899~1986)는 세상의 모든 책과 정보가 있는 도서관을 '바벨의 도서관'이라 불렀다. 당시만 해도 판타지였다. 하지만 현대인은 이제 '바벨의 도서관'이라는 보물의 주인임을 스스로 알고 있다. 분명히 어딘가에는 있다는데, 필요한 때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면 그 보물이 무슨 소용일까. 이 책을 감수한 물리학자 김상욱 부산대 교수는 "이 책을 읽고 나면 4차 산업혁명이나 인공지능 이야기는 오히려 하찮게 느껴질 것"이라고 했다. 우주의 주인은 사피엔스가 아니라 인포메이션 그 자체에 있을지도 모르니까. 2011년 출간 당시 뉴욕타임스, LA타임스, 보스턴 글로브 등 대부분 유력지의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다. 국내엔 조금 늦은 출간이지만, 미래 예측서가 아니라 흐름과 추세라는 관점에서 여전히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