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권〈사진〉 고용노동부 장관은 요즘 서울 일정이 잡히면 국회의원들에게 연락해 만나자는 약속 잡기에 바쁘다. 2월 임시국회에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다.

이 장관은 근로기준법 등 노동 개혁 4법 처리에 반대한 노동운동가 출신 홍영표 국회 환경노동위원장(더불어민주당)을 이달 들어 두 번 만났다. 예산결산위 등 국회 공식 일정이 있는 날에는 시간을 쪼개 하루종일 의원실을 들락날락했다. 하루에 6명의 의원을 찾아간 적도 있다. 언론 인터뷰나 공개 석상에서 마이크를 잡으면 절박한 목소리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조속히 국회에서 처리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장관이 근로기준법 개정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것은 올 상반기에 닥칠 '고용 절벽' 때문이다. 법 개정으로 이를 조금이나마 완화해 보자는 것이다. 장기 불황과 구조 조정 여파로 현재 각종 고용 지표는 빨간불이 켜진 상황이다. 국내 제조업 취업자는 지난해 12월 처음 감소세를 기록했고, 지난해 실업자 수는 사상 처음으로 100만명을 돌파했다. 최근 고용 환경이 이처럼 악화되자 이 장관은 노동 개혁 4법(근로기준법, 고용보험법, 산재보험법, 파견법)을 동시 처리해야 한다는 기존 방침을 바꿔 근로기준법이라도 조속히 처리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이기권(왼쪽) 고용노동부 장관이 1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30대 그룹 CEO 간담회에서 참석자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고용 절벽' 속 청년실업률 악화 … 정부, 공무원 3만명 앞당겨 뽑는다 ]

이 장관은 18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30대 그룹 인사 담당 최고경영자(CEO)와 가진 간담회에서도 근로기준법 처리를 호소했다. 간담회는 최근 '주요 대기업이 올해 대졸 상반기 채용을 지난해보다 8000명 줄일 계획'이라는 정부 조사 결과가 나온 이후 마련했다.

이 장관은 간담회에서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법과 제도의 불확실성은 정부에서 책임지고 해결할 것"이라며 "신규 채용을 늘려 달라"고 주문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의 핵심은 현행 68시간인 주당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줄이고, 초과 연장 근로를 허용하는 특례 업종의 수를 현행 26개에서 10개로 축소하는 것이다. 고용부는 이럴 경우 앞으로 5년 동안 최대 15만개 일자리가 새로 생길 것으로 기대한다. 이와 함께 법적 분쟁 소지가 되고 있는 연장·휴일 근무 수당 지급 방식을 명확히 해 임금 체계 관련 불확실성을 해소하겠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현행 근로기준법에는 연장·휴일 근무 규정이 따로 없어서 노사 간 소송이 줄을 이었다. 현재 소송 10여건이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현재 당·정 협의를 거쳐 국회 환노위 법안심사 소위에 계류 중이다. 일부 전문가는 정부가 노동 4법 일괄 처리 방침에서 물러선 만큼 야당도 입장 변화를 보일 수 있다고 전망한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근로시간 단축 문제는 그간 노·사·정이 어느 정도 공감대를 이뤄왔던 부분"이라며 "이는 일자리 창출뿐 아니라 OECD 최고 수준인 우리나라의 장시간 노동 관행을 해소하는 데도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탄핵 정국 돌입 이후 공무원들이 '복지부동'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인식이 퍼져 있다. 이 장관은 "대통령 탄핵 심판 여부는 헌법재판소에서 알아서 판단할 일"이라며 "정책 책임자로서 올해 더 심각할 것으로 보이는 청년 실업,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뭐든지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하면 어른(정부·국회·노사)이 청년에게 죄를 짓는 것"이라고도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