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16일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귀국 인사를 했다. 지난 12일 귀국 후 나흘 만이다. 반 전 총장은 또 이날 귀국 후 처음으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고향인 PK(경남·부산) 지역을 찾아 자신에 대한 문 전 대표의 비판에 조목조목 반박하며 각을 세웠다.

반 전 총장은 이날 오전 10시쯤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를 방문하는 길에 박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했다. 반 전 총장은 박 대통령에게 "직접 찾아뵙고 인사 드려야 하는데 상황이 이렇게 돼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용기를 갖고 부디 잘 대처하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국회의 탄핵소추로 직무가 정지된 상황이어서 청와대로 예방하지 못하는 데 대해 양해를 구하고,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과 관련해 원론적 차원의 덕담을 건넨 것이라고 반 전 총장 측은 밝혔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6일 부산 자갈치시장을 방문해 한 상인이 건넨 방어를 두 손으로 들어 올리며 웃고 있다.

[반기문 "노무현 배신한 적 없다"]

반 전 총장은 이어 유엔사무총장 재직 시절 추진한 기후변화협약 비준 등에 박 대통령이 협력한 데 감사의 뜻도 전했다고 한다. 이에 박 대통령은 "귀국 이후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고 듣고 있다"며 "유엔사무총장으로서 10년간 노고가 많으셨고 많은 성과를 거두셨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어 "수고하셨고 축하드린다. 건강 유의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통화는 2분 정도 이뤄졌고, 반 전 총장 측 이도운 캠프 대변인이 통화 내용을 공개했다.

정치권에선 반 전 총장이 이날 여권 지지층을 염두에 두고 박 대통령과 통화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샤이(shy) 박근혜(숨어 있는 박 대통령 지지층)'를 의식했다는 얘기다. 반 전 총장은 올 초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에게는 미국에서 전화로 신년 인사를 했다. 하지만 당시 박 대통령에게는 신년 인사를 하지 않았다. 반 전 총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난 원래 매년 전(前) 대통령들에게, 돌아가셨다면 영부인들에게 전화를 다 했는데 올해 박 대통령에게 안 했다"며 "그런데 권양숙 여사에게는 전화를 하면서 박 대통령에게는 안 하느냐는 말이 나와서 오늘 한 것"이라고 했다.

반 전 총장은 이날 부산 유엔평화공원도 찾았다. 그는 유엔묘지에 참배하고 기자들과 만나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위안부 할머니들의 한을 풀어줄 수 있는 내용이 돼야 한다는 게 나의 원칙"이라며 "만약 (위안부 합의가) 소녀상 철거와 관계가 있다면 잘못된 것"이라고 했다.

반 전 총장은 또 문재인 전 대표가 17일 출간한 대담집에서 자신을 비판한 데 대해 반박했다. 그는 문 전 대표가 책에서 '반 전 총장은 마른자리만 걸어온 분'이라고 한 데 대해 "나를 양지에서 자란 사람으로만 보는 모양인데 6·25 때 땅바닥에 앉아 공부해 외교관과 유엔사무총장이 된 '유엔의 아이'"라며 "(문 전 대표의 주장은) 일방적인 생각"이라고 했다. 문 전 대표가 '반 전 총장은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쪽에 서본 적이 없다'고 한 데 대해선 "내가 문 전 대표보다 더 오래 살며 한국의 변혁을 더 많이 겪었고 세계를 다니면서 어려운 일을 훨씬 더 많이 경험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려) 노력했다"며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된다)"라고 했다.

반 전 총장은 이어 부산에서 대학생들을 만났다. 그는 이 자리에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대한 입장이 뭐냐'는 물음에 "작전지휘권을 (남의 나라에) 주길 원하는 나라는 없다. 다만 참혹한 6·25를 겪으면서 정부 지도자들이 국민 안위를 위해 불가피하게 이런 조치(전작권 미국 이양)를 한 것"이라며 "(안보) 상황이 개선되면 스스로 작전지휘권을 갖는 방향이 돼야 한다"고 했다.

반 전 총장은 이날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협력 업체 관계자들을 만난 자리에선 "각국 정상들이 플랜트 수출을 위해 맹렬히 뛰고 있다"며 "(유엔사무총장을 지내면서) 세계 지도자와 네트워크가 많아 (수출 촉진을) 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