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시청률 20%대를 찍고 있는 SBS 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은 우리나라 최초의 야담집인 어우야담(於于野談)에 나오는 인어 이야기를 모티브로 했다. 실제로 SBS '푸른 바다의 전설' 기획의도 항목을 보면 어우야담 중 인어가 등장한 대목이 실려 있다.

김담령이라는 사람이 흡곡현의 현령이 되어 해변에 있는 어부의 집에서 묵었다. 어부에게 무슨 고기를 잡았느냐고 물으니 대답했다. "어떤 백성이 낚시를 하다 인어 여섯 마리를 잡았는데 그중 둘은 창에 찔려 죽었고 나머지 넷은 살아 있습니다."

나가 보니 모두 네 살 아이 같았는데 얼굴이 아름답고 고왔고 콧마루가 우뚝 솟아 있었고 눈은 빛났으며 손바닥과 발바닥의 주름살 무늬와 무릎을 껴안고 앉는 것까지 모두 사람과 다름없었다.

담령이 가련하게 여겨서 어부에게 놓아주자고 청하자 어부가 아까워하며 말했다. "인어에게서 기름을 취하면 무척 품질이 좋아 오래되어도 상하지 않습니다. 날이 갈수록 부패하여 냄새를 풍기는 고래 기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습니다."

담령은 어부에게서 인어들을 빼앗아 바다로 돌려보내니 그들은 마치 거북이나 자라가 유영하는 것처럼 헤엄쳐 갔다. 담령이 이를 무척 기이하게 여기니 어부가 말했다. "큰 인어는 사람 크기만 한데 이들은 작은 새끼일 뿐이지요"

그런데 SBS가 소개한 인어 글은 전문(全文)이 아니다. 말을 꾸며내거나 왜곡한 건 아니다. 다만 진실을 조금 덜 말한 부분이 있다.

전지현과 인어의 이미지를 매칭시켜야 할 SBS 입장에서는 옳은 선택이었다 본다. 하지만 필자는 직업이 기자다 보니, 진실을 알고도 밝히지 않으면 밥값을 못하는 꼴이 된다. 그래서 SBS가 덜어낸 부분을 이 자리에서 온전히 설명드릴까 한다.

◇수염 났어요

콧마루가 우뚝 솟아 있었고, 귓바퀴가 뚜렷했으며, 황색의 수염이 있고, 검은 머리털이 이마에 드리웠으며, 흑백의 눈은 빛났으며 눈동자는 노랬다.

붉은 글씨가 SBS가 생략했지만, '어우야담' 본문에 있던 대목이다. 조선의 전지현은 수염이 누랬던 것이다.

몸은 옅은 적색이거나 온통 백색이었다. 등에 옅은 흑색의 문양이 있었고, 남녀 사이의 음양관계가 사람과 같았다. 손바닥과 발바닥의 주름살 무늬와 무릎을 껴안고 앉는 것까지 모두 사람과 다름없었다. 사람과 대하여 있어도 별다름이 없는데, 흰 눈물을 비처럼 흘렸다.

몸통 색깔도 사람 색깔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음양관계 대목은, 사람처럼 남녀 구분이 있다는 의미다. 이처럼 SBS가 뺀 부분을 모두 종합해 보면 심청(전지현 분)의 모티브가 된 인어는 대략 이렇게 생겼다고 추정할 수 있다. 역시 드라마는 드라마인가 보다.

전지현과 어우야담의 인어 비교.

◇섹드립 좋아

여기서부터는 SBS가 통으로 삭제한 뒷부분이다. 여기서 묘사된 인어가 외양은 전지현에 더 가깝다.

일찍이 들으니 간성(杆城)에 어만(魚巒)이 있어 인어 한 마리를 잡았는데, 피부가 눈처럼 희고 여자 같았다. 농을 걸자 인어는 견권한 정이라도 있는 듯 웃었고, 마침내 바다에 놓아주니, 갔다 돌아오기를 세 차례 반복하더니 갔다고 한다.

일러스트레이터 maria menshikova의 작품 '소녀'.

우리 조상님께서 예쁜 인어에게 농담을 걸자, 인어가 마치 ‘견권한 정’이라도 있는 듯이 웃었다 한다. 무슨 정이기에 웃고 그랬을까.

繾綣之情 [ 견권지정 ] 마음속에 굳게 맺혀 잊혀 지지 않는 정.

사전에는 중립적 어투로 설명돼 있지만, 실제로는 주로 ‘남녀 간의 육체관계’에서 비롯된 정을 가리키는 말이다.

예를 들어, 한문설화집 ‘수이전(殊異傳)’에 나오는 ‘쌍녀분’ 고사를 보면, 통일신라시대 문인인 최치원이 밤길을 걷다 처녀 귀신 자매를 만나는 장면이 있다. 신라 후기를 대표하는 천재답게, 최치원은 자매에게 한 번에 작업을 걸어 원나잇까지 이른다. 누누히 떠들 것 없이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민족정론지 소속이라 차마 적지 못하겠다. 여하간 수이전에서는 이 대목을 묘사할 때 ‘세 사람은 한 이불 아래 견권지정을 나눴다’고 썼다.

즉, 우리 조상님은 인어에게 섹드립을 친 것으로 추정된다. 아무리 예뻤다지만 해물에 대고 섹드립을 친 걸 보니 보통 상남자가 아니셨던 모양이다. 풀어줬는데도 세 번이나 왔다갔다했다 하니, 인어도 그런 조상님이 싫지는 않았었나 보다.

앞서 언급한 최치원도 그렇고, 우리 조상님들은 사람 아닌 것들도 홀릴 정도로 매력남이셨다. 후손들은 반성할 일이다.

◇완전한 사육

조상님들의 기행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SBS가 삭제한 대목 중 마지막 부분이다.

내가 일찍이 고서를 보니, ‘인어 남녀는 모습이 마치 사람과 같아, 바닷가 사람들이 그 암컷을 잡으면, 못에 기르며 더불어 교접하는데, 마치 사람 같다’해 남몰래 웃었었는데, 동해에서 그것을 다시 보게 되려나.

민간 구전 설화인 ‘야담’이니만큼 곧이곧대로 다 믿을 수는 없다. 하지만 꾸며낸 이야기라 쳐도 보통 상상력은 아니다. 참으로 푸른 바다의 전설이라 할만 하다.

참고로 ‘어우야담’ 저자 유몽인은 과거시험에 장원급제해 광해군 때 이조참판을 지냈다. 정상생활 가능한 인물이다.

◇원문은 여기

이제까지 소개한 인어 글은 어우야담 만물편(萬物篇) 인개(鱗介) 부분에 나온다. 이하는 원문이다. 기자가 글이 짧아 오역한 부분이 있을지 모르니, 시간 날 때 읽고 오점을 찾아 마구 질타해 주도록 하자. 여담으로 SBS에는 현령 이름이 ‘담령’으로 나와있지만, 원글의 이름은 ‘빙령(聘齡)’이다.

金聘齡爲歙谷縣令 嘗行宿于海上漁父之家 問若得何魚 對曰 民之漁 得人魚六首 其二則創而死 其四猶生之 出視之 皆如四歲兒 容顔明媚 鼻梁聳 耳輪郭 其鬚黃 黑髮被額 眼白黑照晢黃瞳子 體或微赤 或全白 背上有淡黑文 男女陰陽一如人 手足揩蹠 掌心皆皺文 乃抱膝而坐 皆與人無別 對人無別 垂白淚如雨 聘齡憐之 請漁人放之 漁人甚惜之曰 人魚取其膏甚美 久而不敗 不比鯨油日多而臭腐 聘齡奪而還之海 其逝也 如龜鼈之游焉 聘齡甚異之 漁人曰 魚之大者大如人 此特其小兒耳 曾聞杆城有魚巒 得一人魚 肌膚雪白如女人 戱則魚笑之 有若繾綣者 遂放之洋中 往而復返者再三而後去之 余嘗閱古書 人魚男女狀如人 海上人 擒其牝 畜之池 相與交 亦如人焉 余竊笑之 豈於東海上復見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