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들에게 가끔 한·일 관계에 대해 강의한다. 이런 질문으로 시작한다. "일본이 한반도 식민지 지배를 사죄했다고 생각합니까?" 1~2명만 손든다. 준비해간 자료를 보여준다. 역대 일본 총리들이 식민 지배에 대해 내놓은 담화에 담긴 사과 문구다. 1995년 무라야마 담화부터 시작한다.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많은 손해와 고통을 주었습니다. 역사적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합니다."

▶10년 후 고이즈미 총리도 같은 수준의 담화를 발표했다. 일제의 한반도 강점 100년이 되는 해에 발표한 간 나오토 총리 담화엔 이런 문구가 들어갔다. "아픔을 준 측은 잊기 쉽고, 당한 측은 쉽게 잊을 수 없는 법입니다…다대한 손해와 고통에 대하여 통절한 반성과 진심 어린 사죄의 마음을 표명합니다."

▶1998년 한·일 파트너십 공동 선언에 담긴 문구도 비슷하다. 하지만 다른 담화와 차원이 다르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본의 사과를 한국이 수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총리의) 역사 인식 표명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평가하는 동시에…." 학생들에게 "과거 제국주의 국가 중 식민 지배를 네 번 공식 사죄한 경우는 이뿐"이라고 설명한다. 일본을 옹호하려는 게 아니라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다. 그런 후 다시 일본의 사죄에 대한 생각을 물어본다. 절반 정도 손드는 경우도 있고 2~3명만 드는 경우도 있다.

▶손들지 않은 학생들 말은 대개 같다. "곧 딴소리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사실이다. 1953년 "일본의 통치는 한국에 은혜였다"는 망언을 시작으로 일본 정치가의 막말이 한해라도 끊긴 적이 있었나. 위안부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 문제에 일본 관방장관이 공식 사죄한 고노 담화가 나온 지 24년이 흘렀다. 재작년엔 총리가 재차 사죄했다. 그 내용을 읽어줘도 학생들 손이 잘 올라가지 않는다. "위안부는 매춘부"라는 어느 일본 정치인의 막말이 그들의 가슴에 박혀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한국을 향해 "사죄와 반성을 대체 언제까지 하라는 것이냐"고 항변한다. "공식 발표를 일본의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느냐"고 한다. "식민 지배와 무관한 후손까지 사죄를 반복할 수는 없다"고도 한다. 한국은 일본의 공식 발표보다 이어지는 망언에 무게를 둔다. "망언은 공식 사죄에 진정성이 없다는 증거"라고 한다. "피해자가 용서할 때까지 사죄를 멈추지 말라"고도 한다. 이 쳇바퀴가 끝없이 돌아가고 있다. 양국 정치인들은 그걸 이용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