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 '너의 이름은.'

현재 박스오피스 1위 영화는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너의 이름은.'(君の名は.)
개봉 8일 만인 11일 누적관객 수 150만명을 돌파했다. 개봉 첫주부터 1위에 올랐고, 10일 하루 기준 2위~5위 영화 관객을 모두 합친 것보다 '너의 이름은.' 관람객이 더 많다.

그런데 영화 흥행과 함께 빠른 속도로 확산된 단어가 있다. 바로 '혼모노(本物)'다. 일본어에서는 '진짜'라는 뜻으로 쓰이는, 심플한 단어다.

그러나 요즘 한국에서 '혼모노'는 이런 문장에서 쓰인다.
"제발 혼모노들 입 좀 다물고 영화 봐라"
"저 혼모노, 개짜증"

굳이 번역하자면, '혼모노'는 '(민폐 끼치는)오타쿠'라는 의미다.
정작 영화에서 '혼모노'라는 단어가 부각되는 대목은 한 곳도 없는데, 왜 갑자기 '혼모노'가 원래 뜻과는 상관없는 부정적 의미로 쓰이게 됐을까.


혼모노 이전에 '혼모노' 있었다

사실 '너의 이름은.' 돌풍 한참 전부터 디시인사이드(디시),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등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혼모노라는 단어를 쓰고 있었다.

디시나 일베에는 회원 스스로 '또라이'를 자청하는 기묘한 풍습이 있다. 물론 모든 회원이 다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회원이 다른 커뮤니티보다 많은 것은 사실이다. 2010년 즈음부터 '병신 같으면서도 웃기다'는 의미인 '병맛' 문화가 인터넷에서 히트를 치며 탄생한 풍조.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또라이를 가장하는 사람들 속에서 진짜 또라이가 종종 나타났고, 그렇게 등장한 '진짜'는 군계일학(群鷄一鶴)처럼 평범한 인간 군상 사이에서 유달리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이들이 커뮤니티에 모습을 드러내면 '진짜'가 나타났다는 내용의 댓글이나 게시물을 올리는 관행이 생겨났다. 특히 오타쿠 계열 또라이는 주로 '진짜' 대신 일본어 단어 '혼모노'로 불렸다. 일본 문화를 좋아하니 일본어로 응수해 준다는 것이었다.

'너의 이름은.' 이 호출한 '진짜' 혼모노들

그리고 2017년 1월 4일, 한국에서 '너의 이름은.'이 개봉했다. 일본 명작 애니메이션이 스크린에 오르자 온라인을 떠돌던 혼모노들이 극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이들 중 일부는 영화를 보는 중 등장인물의 언행을 따라 하거나, 주제곡을 큰 소리로 따라부르며 다른 관객들에게 함께 부르자고 하거나, 감동에 벅차 앞자리 의자를 발로 차는 등 온갖 기행을 벌이며 다른 관객의 영화 시청을 방해했다.

한 네티즌이 비속어를 섞어가며 혼모노에 대한 불만을 적은 글을 모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게시판에 올렸다.


게다가 개봉 당일 신카이 마코토(新海誠) 감독이 방한해 서울 CGV 압구정에서 무대 인사를 할 때 일부 관객이 무례한 행동을 한 사실이 알려지며 사람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몇몇 관객이 자신에게 질문기회를 달라고 소리를 지르거나, 통역의 진행을 무시하고 신카이 감독에게 일본어로 직접 말을 거는 등 매너에 어긋난 행동을 하는 모습이 영상을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너의 이름은.' 개봉을 계기로 디시와 일베에서 혼모노를 조롱하는 글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글 숫자가 늘어난 만큼 인터넷에 '혼모노' 단어가 많이 노출됐고, '영화관에서 민폐 끼치는 오타쿠'를 한마디로 설명할 단어를 마땅히 찾지 못하던 네티즌들이 이를 받아들이며 널리 쓰이게 된 것이다.

영화 효과음을 따라하는 관객에 대해 한 네티즌이 분노를 쏟아낸 글.


물론 예전이라고 민폐관객들이 없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오랜만에 일반관객과 '오타쿠'가 동시에 열광하는 영화가 개봉돼, 이들이 같은 공간을 점유하면서 음지의 오타쿠의 문화가 적나라하게 알려지게 된 셈이다.

혼모노 말고, '너폭도'

여담으로 혼모노만큼 많이 쓰이진 않지만, 일각에서는 같은 뜻으로 '너폭도'라는 단어도 쓴다. '너의 이름은 폭도'라는 뜻이다. 이는 일본의 애니메이션 '러브 라이브!'의 극렬 팬들을 '럽폭도'라고 부른 데에서 유래했다.

럽폭도들은 혼모노만큼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러브라이브 영화 관람 중 '젠카이노!(前回の, '지난 회'를 뜻함. 러브라이브 팬이라면 이 소리를 듣고 '러브라이브!'라고 답하는 게 상식이라 한다)'라고 외친다거나, 영화 속 등장인물이 '쌀밥을 먹고 싶다'하자 상영 도중 스크린을 향해 햇반을 던지는 등 상당한 폭거를 저지른 전력이 있다. 다만 국내에서 '러브 라이브!'가 '너의 이름은.'만큼 대중적인 인기를 얻지 못했던 통에 이들의 만행은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