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소통은 이제 시대의 부름이다.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온갖 경영 소프트웨어는 물론 하드웨어, 즉 사무실 자체를 소통의 공간으로 디자인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그야말로 창의성 하나로 먹고산다 해도 과언이 아닌 세계적인 IT 기업들이 이런 흐름을 선도했다. 직원들이 꽈배기 모양의 미끄럼틀을 타고 카페 같은 회의실로 내려오는 구글, 회의 탁자 상판을 아예 태블릿 PC로 제작한 마이크로소프트, 직원들을 위해 게임룸까지 완비한 페이스북…. 이제 곧 완공될 우주선 모양의 애플 제2캠퍼스에는 또 어떤 기발한 소통 공간들이 마련돼 있을지 몹시 궁금하다.

2008년 국립생태원 건립 기획을 총괄하던 나는 공공기관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며 소통 공간에 대해 많은 공부를 했다. 직원들의 동선이 필연적으로 교차하도록 건물을 부채꼴로 짓는 아이디어에서, 복사기를 사무실마다 따로 둘 게 아니라 한 방에 모아 최소한의 소통이라도 도모한 사례들까지 두루 벤치마킹했다.

구글 본사 안의 미끄럼틀.

그러나 2013년 초대 원장으로 부임한 나는 국립생태원 건물이 이런 나의 제안이 털끝만치도 반영되지 않은 채 구태의연하게 지어진 걸 보고 좌절했다. 사무실 칸막이를 없애는 노력도 기울여봤으나 큰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직원들이 수시로 이용할 수 있는 소통 공간을 따로 만들기로 하고 본관 중정에 카페 공사를 시작했다. 워낙 협소한 공간이라 미국 어느 기업에 있는 것처럼 볼링장은 고사하고 끝내 당구대나 탁구대도 놓지 못했다. 이름은 내가 제안하고 업무 보고 회의에서 중지를 모아 ‘생태둥지방’이라 정했다. 평소에는 그냥 짧게 ‘둥지방’이라 부르기로 했다. 아쉽게도 나는 완공을 조금 앞두고 퇴임하는 바람에 아직 내가 그토록 심혈을 기울여 만든 둥지에 앉아보지 못했다. 언제 몰래 가서 생태원 식구들이 오순도순 모여 앉아 창조의 불꽃을 튀기는 모습을 엿보고 싶다. 아니, 창조의 부담 따위는 떨쳐내고 그냥 게으름의 공간이어도 좋다. 진정한 창조는 정돈이 아니라 흐트러짐에서 나오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