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김한준(29)씨는 고기는 물론 생선, 달걀, 우유, 유제품을 먹지 않는 비건(vegan·완전 채식주의자)이다. 채식을 한 지 4년 됐다. 김씨는 "요즘 채식할 맛 난다"고 했다. "4년 전만 해도 사람들이 '채식을 왜 하느냐'고 따지듯이 물었어요. 모임에서 왕따당할까 봐 채식한다는 걸 숨긴 적도 많고요. 지금은 떳떳하게 말해도 누가 뭐라 하지 않습니다."

수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채식주의자는 까탈스럽고 유별난 존재로 받아들여졌지만, 최근 들어 인식과 환경이 크게 바뀌고 있다. 채식을 하나의 취향이나 이념으로 존중해주는 문화와 함께 채식을 할 수 있는 환경도 개선됐다는 것이다. 디지털상거래회사인 SK플래닛이 '채식주의자'(동명의 소설 관련 SNS는 제외)나 '베지테리언' 단어가 들어 있는 SNS, 뉴스, 댓글 등 15만388건을 분석한 결과 '이해' 또는 '이해하다'가 함께 언급된 횟수는 2015년 976건에서 2016년 4174건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좋다' 또는 '좋아하다'의 경우 2778→5240건, '건강식' 141→1411건, '즐기다' 535→2466건으로 각각 늘었다.

채식 전문잡지 '월간 비건'의 이향재(54) 대표는 "웰빙이나 다이어트 열풍과 함께 가축들이 구제역, AI(조류인플루엔자) 등 전염병으로 살처분되는 것을 비판하는 여론이 확산되면서 채식주의에 대한 관심이나 호감이 증가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채식주의 외국인이나 외국 체류 도중 채식을 접한 사람들이 늘면서 사회 인식이 변한 측면도 있다.

채식주의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이 주기적으로 채식에 참여하는 경우도 증가하고 있다. 한주형(46)씨는 일주일에 한 번 채식을 하는 모임인 '그린 먼데이 코리아'에서 활동하고 있다. 한씨는 "소, 돼지 등을 키우느라 자연환경이 많이 파괴되고 있다"며 "일주일에 하루만 채식을 해도 자연을 많이 보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네이버 채식 카페인 '채식공감' 운영자 김윤일씨는 "예전에는 정기모임을 하면 건강이나 종교 등 이유에서 순수 채식을 하는 사람들만 모였는데 최근에는 채식주의자 가족이나 육식을 하는 일반인들도 상당수 참여하고 있다"고 했다.

웰빙, 다이어트, 환경보호 등 다양한 이유로 채식 인구가 늘면서 식품·유통업체들이 이들의 취향을 고려한 메뉴와 신상품을 내놓고 있다. 사진은 유기농 쌈채소와 양푼 샐러드존 코너 등을 새로 구성한 한식 레스토랑 ‘올반’.

식품·유통업체도 채식주의를 반기고 있다. 이들이 충성도 높은 고객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쇼핑몰 11번가의 2015년 '채식콩고기' 매출은 전년보다 210% 증가했다. 인터넷쇼핑몰 옥션의 '채식라면' 2016년 매출은 전년 대비 469% 늘었다.

채식 전문식당 또는 호텔 외에 일반 식당에서도 채식주의자를 위한 메뉴를 속속 내놓고 있다. 서울 합정동 중국음식점 '웨이바오'에는 깐풍표고버섯, 탕수표고버섯, 채식짬뽕, 채식짜장 등이 있다. 이 식당 사장 위모(40)씨는 "5~10년 후에는 식당들이 서로 채식 손님들을 붙잡으려고 경쟁하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채식주의자 가운데 음식 외에도 동물성 원료로 만든 모든 제품의 사용을 꺼리는 사람이 많아, 비건 샴푸나 비건 콘돔 등을 수입해 판매하는 인터넷 쇼핑몰도 증가 추세다. 올겨울 아웃도어 업체들은 가죽이나 동물 털이 없는 의류 제품에 '비건 패션'이란 이름을 붙여 마케팅을 하고 있다.

'Why?' 조선일보 土日 섹션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