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이 시작부터 정상적이지 않게 진행되고 있다. 5일 2차 변론 기일 심리에서 박 대통령 측 대리인은 "소크라테스도 예수도 군중 재판으로 십자가를 졌다" "촛불 시위는 대한민국에 대한 선전포고" "시위 주동은 주체사상 따르는 사람들" "북한이 극찬한 언론 기사를 탄핵 사유로 결정한다면 헌법 위반"이라고 했다. 구체적 소추 사실에 대한 반박이라기보다는 정치 발언에 가까웠다.

이날 증인으로 채택된 이재만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과 안봉근 전 국정홍보비서관도 출석하지 않았다. 이들은 아예 잠적한 상태다. 이영선 청와대 행정관은 불출석 사유서를 냈다. 유일하게 출두한 윤전추 행정관도 "모른다"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해 신문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탄핵 심판은 대통령 파면 여부를 결정하는 막중한 헌법 재판이다. 이재만·안봉근은 최순실씨 국정 농락을 상당 부분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이다. 그런 책임도 느껴야 할 인물들이 출석 요구서 접수를 피하는 것은 치졸하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도 같은 방법으로 한동안 국회 청문회를 피했다.

대통령 탄핵이 인용되려면 헌재 재판관 9명 중 6명 이상 찬성해야 한다. 그런데 박한철 헌재 소장과 이정미 재판관 임기는 각각 오는 31일과 3월 13일 끝난다. 두 재판관 임기가 끝날 때까지 헌재가 결론을 못 내리면 박 대통령 탄핵에는 나머지 재판관 7명 가운데 6명의 찬성이 필요해 두 명만 반대해도 탄핵이 기각된다. 이에 따라 박 대통령 주변 인물들의 출석 회피는 그런 상황을 바라고 헌재 심판 절차를 일부러 지연시키려는 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 박 대통령 측 변호인단은 이날 "엄격한 형사소송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고 했다. 이 주장이 받아들여지면 검찰의 수사 자료가 증거로 인정받기 위해선 관련 당사자들을 법정으로 불러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해진다. 심판이 늦어질 수 있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법률적 권리는 최대한 보장돼야 한다. 그러나 법률 절차를 이용해 심판을 지연시켜 헌재 구성의 변화를 기다리는 것은 옳지 않고 당당하지도 않다. 탄핵 심판은 '대통령이 국정을 담당할 자격이 있느냐' 여부를 법리적으로 결정하는 것이며 이 외의 다른 변수는 허용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