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축산과학원이 개발한 이종 장기 이식용 돼지. 면역 거부반응 관련 유전자 2개가 변형됐다.

"혈관으로 들어가고 있는 빨간 액체에 돼지 췌도(膵島)가 들어 있습니다. 머지않아 당뇨 환자의 희망이 될 세포입니다."

지난 12월 14일 오전 서울 동숭동 서울대 의대 의생명동물자원연구센터 지하 1층 수술실. 이가을 연구원이 어깨 위로 들고 있는 튜브에서 나온 관이 수술대 위 원숭이의 복부 혈관으로 이어졌다. 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단 소속 수의사인 김종민 박사는 이날 정원영 연구원과 30여 분 수술 끝에 돼지 췌도를 원숭이에게 이식(移植)하는 데 성공했다.

췌도는 췌장에서 인슐린을 분비하는 세포들이 '섬'처럼 군데군데 뭉쳐 있는 것을 말한다. 이종장기사업단은 당뇨 환자에게 돼지의 췌도를 이식해 인슐린 주사를 맞지 않고도 인체 스스로 혈당을 조절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다. 박정규 사업단장(서울대 의대 교수)은 "인간과 같은 영장류인 원숭이에 돼지 췌도 이식이 가능함을 입증하면서 기술적으로 80% 이상 수준에 이르렀다"며 "법적 기준만 마련되면 2018년 하반기에 세계 최초로 당뇨 환자 2명에게 돼지 췌도 이식수술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내년에 세계 첫 이식수술 목표

이날 수술은 돼지와 원숭이를 오가는 이식수술이라고 하지만 병원에서 환자에게 수액을 주사하듯 간단하게 이뤄졌다. 차이가 있다면 팔목에 돋아난 혈관 대신 원숭이의 배 속 소장(小腸) 주변에 그물처럼 펼쳐진 간문맥(肝門脈) 혈관에 주사기를 찔러 넣는다는 점이었다. 김 박사는 "간문맥은 소장의 영양분을 간으로 보내는 혈관인데 이곳을 따라 돼지의 췌도 세포들이 원숭이 간으로 간다"고 말했다.

연구원들은 이런 이식수술을 이미 70여 차례나 진행해 모든 과정이 능숙했다. 배를 가르고 혈관에 바늘을 찔러 넣었지만 피 한 방울 나지 않고 말끔하게 봉합까지 끝냈다. 김 박사는 "사람에게 이식할 때는 오히려 원숭이보다 훨씬 간단하다"고 말했다. 복부를 절개할 필요도 없다. 수술 의사는 X선 영상을 보면서 가는 바늘을 찔러 넣어 간 혈관에 직접 췌도를 주입할 수 있다. 연구진은 당뇨 환자 한 명에게 미니 돼지 두 마리분의 췌도면 충분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12월 14일 서울대 의대 의생명동물자원연구센터에서 (왼쪽부터) 김종민·정원영·이가을 연구원이 원숭이에게 돼지의 췌도를 이식하는 수술을 하고 있다. 이 대학 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단은 인간과 같은 영장류인 원숭이를 통해 돼지 췌도 이식의 안전성과 효능을 입증했다. 2018년에는 세계 최초로 돼지 췌도를 당뇨 환자에게 이식하는 임상시험을 진행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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췌도 이식은 특히 혈당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는 일부 당뇨 환자에게는 마지막 희망과 같다. 이런 환자는 운전 중에 갑자기 쇼크에 빠져 대형 교통사고를 일으키기도 한다. 스스로 인슐린 주사를 맞을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2000년 캐나다 연구진은 이런 당뇨 환자에게 다른 사람의 췌도를 이식해 1년간 인슐린 주사를 맞지 않고 정상 혈당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사람 췌도는 구하기가 어렵다. 우리나라의 장기이식 대기 환자는 2016년 3월 기준 2만7900여 명인데 기증자는 2015년 500여 명에 그쳤다. 평균 대기 시간은 5년이다. 게다가 췌도는 심장이나 폐와 같은 장기와 달리 사망 후 금방 손상돼 이식 시기를 놓치기 쉽다.

과학자들은 돼지에게서 대안을 찾았다. 돼지는 키우기가 쉽다. 특히 다 자라도 일반 돼지의 3분의 1 크기인 미니 돼지는 장기 크기, 형태가 사람과 비슷하다. 같은 영장류인 원숭이는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될 우려가 있어 췌도 추출 동물 후보에서 제외했다.

전 세계에서 경쟁이 가장 치열한 분야는 췌도와 각막 이식이다. 길게는 돼지의 심장·신장·폐 등 장기 전체를 사람에게 이식하는 것이 목표이지만 면역 거부반응을 해결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이에 비해 췌도나 각막은 크기도 작고 세포 수도 적어 사람에게 이식했을 때 다른 장기보다 면역 거부반응이 덜해 상용화가 가장 빠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미국과 뉴질랜드·중국·일본에서 돼지 췌도를 캡슐로 싸서 사람에게 이식하는 임상 시험을 하고 있다. 일본 오쓰카제약은 2014년 캡슐형 췌도 이식의 선두 주자인 뉴질랜드 리빙셀테크놀로지(LCT)사를 인수했다.

우리나라는 캡슐을 쓰지 않는 돼지 췌도 이식에서 가장 앞서 있다. 캡슐을 쓰면 면역 거부반응을 막을 수 있지만 사람 혈관이 췌도로 연결되지 않아 오래 쓰지 못한다. 이종장기사업단은 세계 최초로 돼지 췌도를 그대로 사람에게 이식해 사람 혈관으로부터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받도록 할 계획이다. 다른 나라의 캡슐 췌도 이식이 임시방편이라면 우리나라는 영구용 췌도 이식을 시도하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캡슐 없이 돼지 췌도를 이식 받은 원숭이 8마리 중 5마리가 최소 6개월 생존해야 사람에게 이식할 수 있다는 지침을 만들었다. 사업단은 이 조건을 세계에서 유일하게 충족했다.

돼지 각막 이식도 성공 가능성이 높다. 중국 정부는 2015년 4월 돼지 각막의 인체 이식을 공식적으로 허용했다. 하지만 각막 전체를 이식한 것은 아니었다. 박정규 단장은 "중국에서는 각막 중에 세포가 없는 일종의 그물 부분만 이식한다"며 "우리는 이미 각막 전체를 원숭이 5마리에게 이식해 안전성을 입증했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엔 돼지 각막을 원숭이에게 이식하는 수술도 이어졌다.

약 아닌 시술로 인정할 법률 제정해야

박정규 단장은 "돼지 유전자를 사람처럼 변형해 인체 면역 세포의 공격을 회피하는 방법을 활발하게 연구하고 있지만 아직은 유전자 변형에 거부감을 나타내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이 때문에 사업단은 일단 면역 억제제를 사용해 돼지 장기 이식의 효능을 입증하고, 사회적 공감대가 마련된 후에 유전자를 변형한 돼지의 조직이나 장기를 이식할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채워야 할 단추는 법률이다. 현재로선 돼지 췌도는 줄기세포와 마찬가지로 약으로 간주돼 환자에게 주입하려면 몇 년에 걸쳐 임상 시험을 해야 한다. 하지만 미국이나 중국, 일본은 응급 환자에게 의사 책임 아래 시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새로운 법안을 만들고 있다. 박 단장은 "법적 뒷받침만 되면 당장이라도 환자에 임상시험을 하고 싶다"며 "우리나라가 돼지 췌도 이식에서 가장 앞서 있어 외국에서도 한국이 어서 빨리 물꼬를 터주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