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자(72) 대한가정법률복지상담원장은 지난 50년간 이혼 상담을 해왔다. 그를 거쳐 간 부부만 16만쌍이 넘는다. 정작 양 원장은 미혼이다. "결혼 안 하고 부부 상담을 할 수 있느냐"고 묻자 양 원장은 "애를 낳아봐야 산부인과 의사가 되나요"라고 했다.

"물론 20대 초반에는 힘들었어요. 아는 척하려고 '저 결혼했어요' 거짓말도 했죠. 어느 날 한 부부가 찾아왔어요. 남편이 '포경 수술을 했는데 그새를 못 참고 아내가 바람을 피웠다'고 하더군요. 제가 '포경 수술이 뭐예요' 물으니까 부부가 웃더라고요. 50년 상담했으니 지금은 그런 일 없죠. 저는 16만번 결혼한 거나 마찬가지죠. 상담할 때 부부의 인생이 저한테 다 오거든요."

양정자 원장 뒤의 검은색 파일들은 그와 상담위원들이 기록한 부부 조사 자료다. 그는 “저보고 부부 싸움 해결사라고 하는데 그보다는 사랑의 전도사라는 표현을 더 좋아하지요” 했다.

최근 서울 신정동에 있는 상담원을 찾았을 때, 원장실에서 냉랭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렇게 해서 잘 되겠어요? 이건 또 뭐예요!" 원장실에서 나오는 상담 위원들 얼굴이 벌겋게 굳어 있었다. 양 원장은 "상담원을 제대로 운영하려면 때로 시어머니 역할을 할 수밖에 없어요. 이태영 선생님께서 제게 그러셨던 것처럼요"라고 말했다. 전남 무안 출신인 양 원장은 1966년 2월 이화여대 법학과를 졸업한 직후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 들어갔다. 상담소 소장은 우리나라 여성 최초 법조인이자 인권운동가인 이태영 박사였다.

"어릴 때 나폴레옹 책을 감명 깊게 읽었어요. 잠자리 머리맡에는 항상 세계지도책이 있었고요. 인권변호사가 된 후 국회의원 되려고 법대에 갔지요. 당시 이태영 선생님께서 이대 법대 학장을 겸하고 계셨는데,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서 상담 실습하는 3학점 수업을 만드셨어요. 그곳에 펑펑 울면서 찾아오는 여성들을 만나면서 인생이 바뀐 것 같아요. 친구들이 '너는 이대 가서 인생 베려부렀다'고 하죠."

양 원장은 이태영 박사를 도와 상담소 국내 지부 27개 소, 해외 지부 12개 소를 개설했다. 그는 이 박사가 1998년 별세한 뒤 이듬해 3월 상담소를 정년퇴직했다. "그때 주변에서 '이렇게 중요한 일을 왜 그만두느냐'고 성화였어요. 그래서 여러 독지가 도움을 받아 1999년 8월 대한가정법률복지상담원 문을 열었습니다. 형편이 넉넉지 못한 가정의 법률 상담을 도왔는데, 가정 폭력이나 이혼 상담이 많았어요."

그는 "1960년대 법적 이혼 사유는 남편의 부정과 간통, 시부모나 남편의 학대가 대부분이었다"고 말했다. 상담소를 찾는 사람도 대부분 여성뿐이었다. 양 원장은 "지금은 이혼 상담하러 오는 사람 절반이 남성"이라며 "이혼 사유도 경제 갈등이나 성격 차이가 제일 많다"고 했다. "그래도 바뀌지 않는 게 있어요. 한국 남자들은 여전히 밥에 목숨 거는 것 같아요. 노소를 불문하고 아내가 형편없는 사람이라는 걸 표현할 때 '이 여자가 아침밥 한 번 안 해준 여자예요' 이럽니다."

양 원장은 "처음 상담할 때는 적극적으로 이혼 소송을 도왔지만 지금은 '우선 시간을 두고 참아보라'고 얘기한다"고 했다. "아내가 바람피웠다고 이혼한 남자가 있었어요. 그때는 이혼이 답인 것 같았지요. 이혼한 뒤에 남자가 그래요. '전에는 신경 쓸 게 10가지였다면 이혼 후엔 3가지밖에 안 된다. 그렇지만 아내가 있을 때 더 삶의 활력이 있었다'고요." 양 원장은 "부부 싸움의 최선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라며 "처음 기분이 상했을 때 극존칭의 높임말을 쓰기로 하는 식으로 부부끼리 싸움의 양식을 정하면 전면전을 예방할 수 있다"고 했다.

양 원장은 "50년 부부 상담 끝에 내린 결론은 상대가 원하는 사랑을 해주라는 것"이라고 했다. "예전에 사과주스 때문에 같이 못 살겠다고 찾아온 새신랑이 있었어요. 자신은 사과가 정말 싫은데 아침마다 아내가 사과를 직접 짜서 주스를 만들어 준다는 거예요. 싫다고 해도 계속 준대요. 결국 이혼했지요. 저도 그때는 '아내가 싫으면 싫다고 하지 무슨 사과주스 탓을 하나' 싶었는데, 지금은 좀 알 것 같아요. 사과 하나 때문에 헤어질 수 있는 게 남녀 관계, 부부 사이라는 걸요."

양 원장은 1999년 가정법률상담소 퇴직금으로 받은 5000만원 전액을 대한가정법률복지상담원에 내놨다. 최근에는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경북 군위 땅 4만9600㎡(약 1만5000평)도 기부했다. 그는 "그 땅에 시민 단체에 일생을 바친 여성들이 노년을 보낼 수 있는 건물이 지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저는 집 한 채 있는데요. 저 죽으면 집값 반은 상담원에, 반은 이런 일 하려는 학생들 장학금으로 써달라고 했어요. 제 장례식 때 조의금도 받을 거예요. 장학금 보태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