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대통령과 더불어 크리스마스 캐럴도 탄핵당했다는 우스갯소리가 들린다. 크리스마스와 연말 분위기를 한껏 띄워야 하는 상인들조차 시국이 이런데 자칫 캐럴을 틀었다가 뺨 맞을까 두렵단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가라앉기 시작한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장기적인 경제 불황 때문인지 기독교 정신의 퇴색 때문인지 크리스마스가 영 예전 같지 않다.

해마다 이맘때면 산타의 썰매를 끌던 루돌프의 상황도 여의치 않다. '루돌프 사슴 코는 매우 반짝이는 코'라지만 실제 루돌프는 사슴이 아니라 순록이다. 현재 순록은 북극 지방 20여 곳에 총 250만 마리 정도가 살고 있지만 거의 모든 곳에서 그 수가 빠르게 줄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순록 개체군은 러시아 타이미르(Taimyr) 반도에 서식하고 있는데, 지난 2000년에는 100만마리에 달했던 것이 무려 40%나 감소해 지금은 60만마리 정도가 남아 있다.

기후변화로 인해 순록의 영역이 바뀌고 있다. 북극 지방의 평균 기온이 1.5도가량 오르면서 강물이 일찍 녹는 바람에 예전에는 얼음 위로 걸어서 이동하던 순록들이 이제는 헤엄을 쳐서 건너야 한다. 게다가 2000년대로 접어들며 그들의 여름 서식처가 동쪽으로 밀리면서 이동 거리도 훨씬 늘었다. 소련이 붕괴한 후 사냥이 금지돼 순록의 개체 수가 느는 듯싶더니 늑대의 수도 걷잡을 수 없이 함께 늘고 있다. 산불도 점점 빈번해지고 모기도 훨씬 더 극성스러워지고 있다. 무르만스크에 이어 북극권에서 둘째로 큰 도시로 성장한 노릴스크(Norilsk)가 순록의 이동 경로를 막고 오염 물질을 뿜어내고 있다.

산타의 고민도 덩달아 깊어가고 있다. 캐럴의 작사가는 썰매를 끄는 순록에게 남성 이름을 붙였지만 루돌프는 실제로 암컷일 가능성이 높다. 수컷만 뿔이 나는 사슴과 달리 순록은 암수 모두 뿔이 나지만 수컷은 12월에 뿔갈이를 한다. 뿔이 없는 민머리 수컷으로 만족하거나 새끼를 배고 있을 암컷 순록을 기용하고 이름도 새로 지어줘야 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