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사람 잘 가더니 결국 저기서 떨어지네…."

23일 오전 10시 서울 강남운전면허시험장. 난도(難度)가 크게 오른 운전면허제 시행 이틀째인 이날 기능 시험에 응시한 30여 명이 시험장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이들의 시선이 집중된 곳은 'T자 코스(직각 주차)'였다. 전날 전국 면허시험장 기능 시험 합격률이 19.2%에 불과했는데, 응시자 상당수가 이 코스에서 탈락했다.

T자 코스에 진입한 승용차 한 대가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다 옆 차선을 밟자 응시자들 사이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2종 보통 면허 시험을 치러 온 오모(42)씨는 "T자 코스만 통과하면 해볼 만하다던데 보는 것만으로도 떨린다"고 했다.

이날 하루 전국 운전면허 기능 시험에 응시한 1057명 가운데 합격자는 220명으로 합격률이 20.8%에 그쳤다. 너무 쉬워 '물시험'이라던 종전 시험의 평균 합격률(92.8%)에 비해 4분의 1 아래로 떨어졌다. 응시자의 부담을 덜어준다며 지난 2011년 정부가 운전면허 취득을 간소화하기 이전 시험의 평균 합격률(43%)과 비교해도 절반 이하였다. 이날 기능 시험에 탈락한 대학생 정모(26)씨는 "다른 구간에서는 침착하게 했는데 이 구간에 들어서자 손과 발이 마비된 것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며 "응시자들 사이에서 'T자 포비아(phobia·공포증)'라는 말이 퍼질 정도"라고 했다.

T자 코스 폭 50㎝ 줄이자 줄줄이 탈락

'불시험'이라는 새 운전면허 시험에서 난이도 조정 폭이 가장 큰 것은 장내 기능 시험이다. 종전 시험은 시동을 걸고 좌우 지시등과 같은 장치를 켠 뒤 주행하다가 급제동하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번 시험에선 기존 50m 코스가 300m 코스로 대폭 늘어났다. 신호 교차로 통과, T자 코스, 경사로 주행 등 평가 항목도 종전 2개에서 7개로 늘었다.

이날도 역시 불합격자 대부분은 T자 코스에서 선을 밟거나 제한 시간 안에 주차하지 못해 감점을 받았다. 응시자 대부분이 운전면허 학원에서 종전 제도를 기준으로 교육받아서 T자 코스는 제대로 연습을 못 했기 때문이다. 또 면허 시험 간소화 이전 3.5m였던 T자 코스 폭은 이번 시험에선 3m로 줄어들었다.

T자 코스에서는 선을 두 번만 침범해도 20점이 감점돼 합격 최저 점수인 80점이 된다. 제한 시간 2분을 넘겨도 10점이 감점된다. 1종 보통 응시용 트럭은 좁아진 폭에서 전진과 후진을 최소 3~4번 반복해야 하는데 시간 안에 주차하기 쉽지 않다. 경찰은 "최근 아파트나 주택가 주차 공간이 좁아진 탓에 현실에 맞게 기준을 조정한 것"이라며 "후방 센서 등이 장착된 차로 연습하던 사람에게는 특히 더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고 했다.

"시험 어려워진 것 바람직해"… 수강료 늘어 부담도

탈락자가 줄을 잇고 있지만 운전면허 시험의 난도를 높인 것은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많다. 운전면허 시험이 간소화된 이후 기능 시험 평균 합격률이 43%에서 92.8%로 훌쩍 뛰면서 "부실 면허가 사고를 유발하고 있다"는 비판이 많았기 때문이다. 직장인 정민우(42)씨는 "다른 차량을 신경 쓸 필요 없는 상황에서도 합격하지 못하면 복잡한 도심에서 어떻게 안전 운행을 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한편 기능 시험 의무 교육 시간이 종전 2시간에서 4시간으로 늘어 수험생들의 운전 학원 수강료 부담은 커지게 됐다. 서울의 운전 학원은 대부분 새 시험이 시행되자 13시간 교육 코스 수강료를 종전보다 10만원 정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