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김무성·유승민 두 의원을 포함한 새누리당 비주류 현역 의원 34명이 27일 집단 탈당하겠다고 선언했다. 앞으로 세를 더 규합하기로 해 실제 탈당자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정진석 전 원내대표도 "탈당을 고민 중"이라고 했다. 이 정도면 탈당이 아니라 분당(分黨)이다. 보수 정당에서는 3당 합당처럼 합치는 일은 있었어도 갈라지는 것은 처음이다. 그만큼 정치가 격변기에 들어섰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수십 년 동안 양대 세력으로 나누어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사는 적대 정치, 원한 정치를 해왔다. 하지만 4월 총선 때 유권자들은 민주당에서 쪼개져 나온 국민의당에 40석 가까운 의석을 허락함으로써 양당 체제를 깼다. 이번에 새누리당마저 두 세력으로 갈라섬으로써 보수·진보 모두 경쟁 체제가 됐다. 하기에 따라선 정치 발전에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비주류 의원들은 "가짜 보수와 결별하고 진정한 보수 정치의 중심을 세우고자 새로운 길로 가기로 뜻을 모았다"고 했다. 그 선언대로 오염되고 추락한 보수를 버리고 진정한 보수 정치의 가치를 되살릴 수 있느냐가 성패의 관건일 것이다.

새누리당은 식민지로 전락했던 세계 최빈국을 이만큼 키워왔다는 자부심을 가진 정당이다. 그러나 이 자부심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무능·나태하고 독선적인 세력이 당내 패권을 휘두르면서 총선 참패와 최순실 사태 등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연발했다. 지지자들은 절망했다. 이런 상황에 이르렀는데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국민은 보수의 가치 자체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게 됐다. 이 폐허 위에 밑천 없이 새로운 집을 지어야 한다. 묘책은 없다. 책임과 헌신, 관용, 안보와 법치라는 보수 가치로 기둥을 세우고 대들보를 올려야 한다.

현실적으로 보수 진영 내에선 탈당파가 주도권을 쥘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유승민 의원에 이어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원희룡 제주지사도 탈당 의사를 밝혔다. 남경필 경기지사는 이미 탈당했다. 이렇게 되면 새누리당엔 의미 있는 대선 주자가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게 된다. 새누리당은 의석수만 클 뿐 미래가 없는 불모 정당으로 전락할 상황이다.

대선 정국은 크게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 전체적으로 정국은 친박당과 친문(親文·친문재인)당을 양극단으로 하고 새누리 탈당파와 국민의당 등이 중간 지역에 포진하는 형태로 가고 있다. 내년 초 귀국하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까지 가세하면 예상하기 어려운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 새누리 탈당파가 보수의 전통적 가치와 시대 변화에 맞춘 새로운 가치를 균형 있게 갖춘 책임 세력으로 거듭난다면 격동 정국에서도 길을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친박 새누리당 정우택 원내대표는 집단 탈당 발표 뒤 "새누리도 박근혜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탈색해야 한다"고 했다. 진작 그렇게 했더라면 분당도 없었을 것이다. 새누리당이 진실로 가짜 보수를 벗어나면 탈당파와 갈라져 있을 이유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