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의 한파는 우리 사회 취약 계층부터 가혹하게 덮친다. 이미 서민 경제를 강타한 불황 심리가 심각한 수준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올 3분기(7~9월)에 전국 여덟 가구 중 한 가구꼴(13%)로 한 달에 100만원이 안 되는 돈으로 온 가족이 생활한 것으로 나타났다. 매달 100만~200만원으로 생활하는 가구 비중도 과거 30% 정도였는데 이 비중이 40% 가까이로 높아졌다. 전국 가정 절반이 한 달 200만원 미만 돈으로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정도로 서민들 씀씀이가 줄어든 건 글로벌 금융 위기 직후인 2009년에나 나타났던 현상이다. 안 그래도 하위 10% 국민의 가처분소득이 16%나 격감했다고 한다. 이들이 씀씀이까지 줄이고 있으니 생계 압박과 고통이 심각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유독 자영업자 숫자가 많다. 취업자 다섯 명 중 한 명꼴로 자영업자다. 서민들 사이의 내수 경기가 그럭저럭 돌아가야 이 자영업자들도 먹고살 수 있다. 그런데 불확실한 경기 전망으로 쓸 때도 안 쓰고 사람들이 지갑을 닫고 있다. 사치품이나 기호식품은 물론이고 쌀과 식료품, 옷, 신발 등 꼭 필요한 기본 생필품 소비까지도 줄고 있다. 80% 정도이던 평균 소비성향이 71.5%까지 내려갔다. 가처분소득이 100만원이라면 71만5000원만 썼다는 의미다. 지난달 소비자심리지수는 95.8로 전달보다 6.1포인트 하락했다. 이 역시 금융 위기 직후인 2009년 4월 이후 7년 7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소비절벽이 심각한 건 사람들의 일자리와 소득은 늘지 않는데 물가와 금리만 오르고 경기는 언제 풀릴지 감감무소식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각 가정의 실질소득은 작년 3분기 이후 5분기 내리 감소했다. 특히 임시 일용직이나 영세 자영업자 등 하위 10%에 해당하는 빈곤층 소득은 1년 전보다 16%나 줄었다.

지난해와 올해 전셋값과 월세가 오르자 빚내서 집을 산 가구가 많았다. 가계부채가 1300조원으로 불어났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렸는데 국내 대출 금리는 앞으로 금리가 오를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이보다 더 빨리 올랐다. 이런 와중에 대표적인 서민 식품인 라면 값도 오르고 AI(조류인플루엔자)로 계란 값까지 올랐다. 금리도 오르고 물가도 오르니 가뜩이나 위축된 서민들의 소비심리가 더 얼어붙는다.

두 달이 넘은 최순실 사태는 이 냉각된 소비심리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여기저기서 "장사가 너무 안 된다"는 비명이 들린다. 일단 소비심리가 과도하게 얼어붙어 더 큰 침체로 이어지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내수에 온기를 불어넣는 데 정책 최우선순위를 두고 정치권도 과도한 정쟁은 삼가야 한다. 내년도 400조원 수퍼 예산 역시 경제 취약 계층과 민생 살리는 데 투입해 내수 불씨가 아예 꺼지지 않도록 지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