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촛불'이 벌써 두 달째 주말 광화문 거리를 메우고 있다. 광장에 나온 다수의 힘에 밀려서 언론은 하나같이 집회에 참여한 사람 숫자를 뻥튀기하고 있다. 100만으로 시작한 숫자가 이제는 급기야 200만을 넘어섰다. 스스로도 무안한지 교묘한 합리화도 섞는다. 처음엔 광화문이라 하더니, 나중엔 전국이라 하고, 마침내는 전 세계라는 꼬리를 붙인다.

광장에 나온 사람들의 구호는 물론 '탄핵' 그리고 '하야'다. 언론도 촛불에 맞춰 춤을 춘다. 스스로 물러나 국정 혼란을 줄이는 게 박근혜 대통령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애국이라는 조언이 넘쳐난다. 그렇게 하면 전직 대통령 예우는 누릴 수 있다는 해설도 빠지지 않는다. 고양이가 쥐 챙기는 모습이다.

촛불 숫자가 모든 것을 판가름하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그렇다면 물어보자. 이른바 촛불 시위가 시작된 2002년 12월 대선을 앞둔 상황에 관한 의문이다. '의인' 김대업이 양심선언하며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 비리 의혹 사건을 키웠다. 같은 해 6월 벌어진 '효순·미선' 사건에 대한 억지 의혹을 이어받아 엄청난 촛불이 광화문을 뒤덮었다.

십수 년이 지난 지금 이 사건의 실체는 명확히 드러나 있다. '김대업 사기극'이다. 당시 좌파 세력은 이회창을 떨어뜨리고 노무현을 당선시키기 위한 정치 공작으로 이 사기극을 부풀렸다. '아니면 말고' 방식의 의혹으로 좌파가 톡톡히 재미를 본 사건이다. 이 사기극이 불러낸 촛불의 규모 덕분에 노무현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당시에도 엄청난 촛불이 등장했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감히 누가 탄핵하느냐'며 광화문은 촛불로 뒤덮였다. 국민이 뽑았기 때문에 노무현을 탄핵하면 안 된다고? 그렇다면 박근혜는 누가 뽑았나? 국민이 아니고 귀신이 뽑았단 말인가? 또한 노무현 가족의 비리는 문제 삼을 필요 없고, 박근혜 측근의 비리는 문제 삼아야 한다고? 촛불의 등장 구조가 정치적으로 매우 편향돼 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대목이다.

좌파 정부 10년의 적폐를 배경으로 500만표 차로 승리한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한 지 3개월도 안 돼 광우병 촛불에 놀라 반신불수가 됐다. 2008년 봄 미국산 쇠고기를 핑계로 엄청난 촛불이 광화문을 뒤덮었다. 뇌에 구멍이 생기고 사지를 비틀며 죽어간다는 괴담이 전국을 휩쓸었다. 대학생은 물론 중고생까지도 광화문에 모여 촛불을 들었다. 이른바 유모차 시위도 등장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지금 미국산 쇠고기 먹고 광우병 걸렸다는 사람은 눈을 씻고 찾아도 없다.

'아니면 말고' 의혹은 이제 한국 정치를 지배하는 한 패턴으로 자리 잡았다. 다수의 힘으로 편향된 주장을 광장의 대중을 통해 관철하는 정치, 즉 '촛불'에 의한 정치는 우파 정권인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이래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물론 사실과는 상관이 없다. 정치적 의도를 관철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기 때문이다.

기억나는 것만 나열해 보자. 천안함 폭침, 밀양 송전탑, 강정 해군기지, 천성산 터널, 연평도 포격, 세월호 사고 등은 물론이고 문창극 총리 후보 인사청문회, 이승만 망명 조작 사건 등이 대표적 예다. 촛불의 구조는 정치적으로 매우 편향돼 있다. 좌파의 집권 또는 저항을 위해 특정 쟁점에 대한 의혹이 부풀려진다. 의혹이 제기되면 시민 단체라는 탈을 쓴 좌파 단체들이 촛불 집회를 제안한다. 여기에 조직을 가진 민주노총과 전교조 등의 자금과 동원력이 투입된다. 지명도 있는 문화계 인사들이 합류하면 언론이 따라가고 결국은 정치권이 결합한다.

이 구조는 이회창 아들의 병역 비리 의혹부터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국정 개입 의혹까지 모든 사건에서 같다. 여기에 더해 박근혜 정부는 남북 관계를 강경 정책으로 바꾸면서 친북 세력인 통합진보당을 해산시켰다. 때맞춰 언론이 최순실이라는 비선 문제를 끄집어내자, 분기탱천한 좌파가 얼씨구나 올라탔다.

그러나 전체 국민의 여론이 반드시 촛불과 동일하다고 볼 수만은 없다. 지난 10일 광화문부터 대학로까지 행진한 엄청난 숫자의 우파 시민은 촛불 대신 태극기를 흔들며 탄핵과 하야에 반대하는 구호를 외쳤다. 지난 2일부터 탄핵 반대 서명을 받은 사이트는 불과 이틀 만에 40만을 넘었다. 헌재에 탄핵을 압박하기 위해 개설된 '치어업헌재' 사이트는 찬성과 반대가 엇비슷하게 나오자 문을 닫아버렸다. 바닥 민심이 촛불과는 다르다는 증거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