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는 백인의 나라가 돼야 한다”

마린 르 펜(Marion Anne Perrine Le Pen, 이하 르 펜) 국민전선 대표는 최근 떠오르고 있는 프랑스의 극우 포퓰리스트다. 그는 반이민, 반이슬람, 반난민을 주장한다. 자연히 세계화에도 부정적인 입장이다. 보호무역주의를 주창하는 트럼프를 지지한다. 프렉시트(Frexit, 프랑스의 유럽연합 탈퇴)를 주장하는 몇 안되는 정치인이다.

그는 최근 이탈리아 국민투표 부결에 대해서도 “이탈리아 국민은 유럽연합(EU)과 마테오 렌치(전 총리)를 거부했다. 자국의 자유와 보호를 원하는 열망에 귀 기울여야 한다”라고 트위터에 남겼다. 전세계인들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등 포퓰리즘 광풍이 프랑스로도 번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지난해 6월, 마린 르 펜 프랑스 국민전선(FN) 대표가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녀는 이 당 법무팀에 합류하면서 정치 생활을 시작했다.

◆ 폭탄 테러에도 살아남은 ‘파시스트의 딸’

마린 르 펜은 1968년 8월 5일 파리 북서쪽 교외의 위성도시인 뇌이쉬르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극우 정치인으로 유명한 브르타뉴 출신의 장-마리 르 펜(Jean-Marie Le Pen)이다.

장-마리 르 펜은 “독일 나치 정권이 저지른 유대인 대학살은 역사에서 사소한 일”이라고 말해 논란을 빚었다. ‘파시스트’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1972년 우파를 규합해 국민전선(FN)을 만들었다.

아버지의 극우 성향으로 인해 위험한 일도 겪었다. 르 펜이 8살 되던 해, 가족이 살던 아파트의 계단에서 한밤 중 폭탄이 터지는 테러가 일어났다. 건물 외벽이 통째로 무너졌지만, 다행히 가족들은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르 펜은 파리2대학에 입학해 1991년 법학 학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1992년에 형법 석사학위를 취득하는 동시에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결혼생활은 다사다난했다. 1995년 르 펜은 국민전선의 대표로 있던 프랭크 쇼프롸(Franck Chaffroy)와 결혼했다. 쇼프롸와의 사이에서 장녀 잔느(Jehanne), 아들 루이(Louis), 딸 마틸드(Mathilde)를 낳았다. 그러나 2000년 이혼했다.

그 후, 2002년 칼레 지방선거 당시 참모였던 에릭 로리오(Eric Lorio)와 2002년 결혼했지만 2006년에 이혼했다. 2009년부터는 국민전선 전 당대표 루이 앨리엇(Louis Aliot)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 르 펜은 르 펜이고 마린은 마린이다… 아버지와 선 긋는 마린 르 펜

르 펜은 1998년 프랑스 변호사협회를 탈퇴한 이후, 국민전선 법무팀에 합류하면서 정치 생활을 시작했다.

르 펜의 목표는 국민전선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시키고 ‘우파 뿐 아니라 모든 프랑스인들에게 선택받는’ 정당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녀는 꾸준히 중도우파 정당인 공화당과의 연대를 거부하고 있다.

또한, 아버지 장-마리 르 펜의 극우적 발언과도 거리를 두고 있다. 2000년에는 ‘탈 악마화(Le-demonizing)을 목표로 하는 단체인 ‘르 펜 세대(Le Pen Generation)’의 회장을 맡았다. 탈 악마화는 르 펜이 아버지 장-마리 르 펜이 나치 옹호와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악마’라고 불리는 것과 거리를 두려는 시도다.

2004년 총선에서 파리 수도권 지역구인 일 드 프랑스(Île-de-France)에서 당선돼 처음으로 유럽의회에 입성한 그녀는 2009년 총선에서는 북서 프랑스(North-west-France) 지역구에서 의정 생활을 이어간다.

르 펜은 2011년 1월 국민전선 당대표로 당선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67.65%라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 대표 경선에서 승리했다.

르 펜은 당선 직후 “르 펜은 르 펜이고 마린은 마린”이라며 아버지의 극우적 언행과는 다른 행보를 보일 것을 암시했다.

때마침 불었던 반이슬람, 반이민 붐은 그녀의 지지율을 크게 높였다. 2011년 3월 일간지 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니콜라 사르코지 당시 대통령을 제치고 대통령 후보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르 펜에게 2012년 대선은 기적이었다. 대중운동연합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과 사회당 프랑수아 올랑드 등 10명이 입후보한 1차 투표에서 17.9%라는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이는 국민전선 역사상 가장 높은 대선 득표율이었다. 비록 결선투표에 진출하지는 못했지만, 사르코지 대통령 재선의 캐스팅보트를 쥐게 되면서 프랑수아 올랑드 사회당 후보가 당선됐다.

마린 르 펜 국민전선 대표는 지난달 16일 대선 출마를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그녀의 캠프 상징은 기적을 의미하는 파란 장미다.

◆ 트럼프와 닮은꼴 공약으로 중산층과 저소득층 노리는 르 펜

르 펜이 당 대표로 취임하면서, 국민전선의 정책 기조에는 큰 변화가 생겼다. 국민전선 성공의 요인은 아버지와 다른 노선을 걸었던 르 펜의 전략 때문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타임(Time)은 국민전선 지지율 상승의 가장 큰 이유는 EU탈퇴라고 분석했다. 프랑스에서는 EU로 인해 외국인들이 고용시장을 잠식하면서, 삶의 터전을 뺏긴 저소득층과 중산층이 늘어났다. 이 틈을 르 펜이 EU 탈퇴를 주장하면서 지지세를 확보했다는 것이다.

대선을 앞둔 지난 2011년 11월에는 이민 금지 및 백인우월정책, 사형제 부활, 유럽연합(EU) 탈퇴를 골자로 하는 공약을 발표했다.

이듬해 5월, 결선 투표에 진출하지 못하면서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국민전선의 지지세는 꺾이지 않았다. 국민전선은 2014년 3월 지방선거에서 12곳에서 시장을 당선시키는 데 성공했다. 아버지 장-마리가 결사반대했던 동성애를 인정했고, 외국인 이민문제 역시 완전 반대에서 일부 수용으로 정책 노선을 바꾼 것이 주효했다.

이는 러스트벨트(미국 공장 집중지대)의 백인 중산층 노동자를 집중적으로 공략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전략과 일치한다. 지난달 9일 치러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 후보는 민주당이 강세를 보이던 러스트 벨트를 휩쓰는 저력을 보였다. 플로리다, 아이오와 등 경합주에서 밀린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는 이 격차를 극복하지 못했다.

국민전선은 곧이어 5월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에서도 25%의 득표를 얻으며 사회당과 대중운동연합을 누르고 프랑스 1위 정당으로 등극했다. 9월에 치러진 프랑스 상원 선거에서는 창당 후 처음으로 2명의 의원을 당선시켰다.

합리적 행보로 지지 외연도 넓혔다. 2015년 8월에는 나치의 가스실을 옹호하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아버지 장-마리 르 펜을 “국민전선에 큰 해가 되고 있다”며 출당시켰다. 이후, 12월 지방선거에서 조카인 마리옹 마레샬 르 펜(Marion Marechal-Le Pen)이 1차 투표를 통과하는 등 돌풍은 이어졌다.

◆ ‘파란 장미의 꽃말’...기적은 이뤄질까

내년 4월 대선을 앞두고, 프랑스 정국은 요동치고 있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사상 최초로 재선을 포기했다. 25%를 넘긴 청년 실업률과 4%를 간신히 넘는 지지율 때문이다.

공화당으로 이름을 바꾼 대중운동연합은 분주하다. 공화당은 지난달 20일 대선후보 경선을 실시했다. 프랑수아 피용 전 총리가 44.1%로 1위를 차지했다. 결선에서도 피용 전 총리는 66.5% 득표율로 대선 출마가 확정됐다.

집권여당인 사회당에서는 마뉘엘 발스 총리가 유력한 대선 주자로 떠올랐다. 내무부 장관 시절 불법이민자를 강제 추방해 ‘사회당 사르코지’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이밖에도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에마뉘엘 마크롱 전 경제산업부 장관도 르 펜 대표의 강력한 경쟁자다.

르 펜 대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며 “프랑스도 미국처럼 테이블을 뒤집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지율은 연일 상승세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르 펜 대표는 내년 4월 23일 1차 투표에서는 결선에 진출하지만, 5월 7일 결선 투표에서 패할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당선을 예측한 결과는 아니지만, 오랜 기간 군소정당에 머물렀던 국민전선에게는 긍정적인 신호다. 사회당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도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상대 후보들은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좌파당 장-피에르 라파랭 전 국무총리는 “여론조사는 대부분 르 펜 대표가 예선을 통과해도 결선에서 패할 것이라는 전망이지만, 도널드 트럼프도 당선되는 마당에 예상은 의미 없다”며 세간의 예측을 의심했다.

공화당 경선에서 패배한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 역시 “미래를 위해 다른 정치 지도자를 바라는 유권자들의 선택을 존중한다”면서도 “유권자들에게 극단의 길을 택하지 말라고 요구하고 싶다. 프랑스는 더 나은 결과를 누릴 자격이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16일, 르 펜 대표는 파란 장미를 들고 대선 출정식에 임했다. 파란 장미는 이 세상에 없는 꽃이다. 최근에야 유전자 조작으로 파란 장미가 나왔지만, 자연히 생길 수 없는 꽃이기에 꽃말도 ‘기적’이다.

파란 장미는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파란색은 우파의 상징이고, 장미는 사회당을 의미한다. 르 펜 대표는 “낡은 좌파와 우파를 모두 뛰어넘자”고 주장하고 있다. 2017년 5월, ‘파란 장미의 기적’은 현실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