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등 국제 사회에 이변이 잇따르고 있다. 내년 네덜란드 총선(3월), 프랑스 대선(4~5월), 독일 총선(9월) 등에서도 자국 우선주의, 포퓰리즘 열풍이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많다. 글로벌 트렌드가 된 '포퓰리즘 광풍'의 원인은 무엇일까.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 포퓰리즘 지도자들은 누구이며, 그들이 구상하는 정책은 무엇인지 조명해본다. [편집자주]

“베페 그릴로는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

지난 2013년 독일 중도좌파잡지 슈피겔은 이탈리아의 코미디언 출신 베페 그릴로(68) 오성운동 대표를 이렇게 표현했다. 3년이 흐른 지금, 그릴로는 ‘이탈리아 국민투표 부결의 최대 수혜자’로 꼽히고 있다.

2018년 4월로 예정됐던 이탈리아 총선이 앞당겨질 가능성이 커지면서 그릴로의 오성운동이 집권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에 국민투표 부결로 사퇴한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에 이어 오성운동의 대표인 그릴로가 총리로 올라설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그릴로는 국민투표 실시 전, “이탈리아가 진흙탕에 빠졌다”며 개헌을 반대해왔다.

이탈리아 국민투표 부결의 최대 수혜자가 베페 그릴로 오성운동 대표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오성운동은 내년에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총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커졌다.

오성운동(五星運動, Movimento 5 Stelle)은 그릴로가 2009년 직접 민주주의와 반부패, 반유럽연합(EU), 리라화 복귀 등을 걸고 만든 포퓰리즘 정당이다. 그릴로는 “정치인은 국민의 봉사자”라며 부패척결, 정치인 월급 삭감, 선거자금 보조 중단을 주장하고 있다. ‘디지털 유토피아'라고도 불리는 오성운동은 ▲물 ▲교통▲개발▲인터넷접근성▲환경 등 5대 생활밀착형 정책을 내세워 유권자들에게 주목받고 있다.

그릴로는 ‘이탈리아의 트럼프’라고 불릴 정도로 트럼프와 비슷한 점이 많다. ‘광대’라는 별명을 가진 그는 코미디언 출신이다. TV쇼로 인기를 얻은 트럼프처럼 기존 정치권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전통 언론의 외면과 비난 속에서 입지를 넓혀왔다. 거침없는 언행으로 기존 정치권을 비난해온 트럼프처럼 그릴로는 신랄하게 정치권 부패를 비난하며 대중을 정치적 발판으로 삼았다.

◆ 인기 코미디언, ‘인터넷 블로거’에서 ‘정치판’으로 나가기까지

이탈리아 제노바 리구리아에서 태어난 그릴로는 대학에서 회계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그는 학업을 마치지 않고 대학 중퇴를 택했다. 이후 그릴로는 오디션에 참가해 코미디언으로 데뷔한 뒤 각종 TV 프로그램에 출연, 1980~1990년대 활발하게 정치·사회 풍자를 하며 유명세를 탔다. 그는 1986년 자신의 이름을 담은 ‘그릴로 메트로쇼’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지만 바로 다음해 베티노 크락시 당시 총리를 비판해 공영방송 RAI 등에서 퇴출당한다.

1993년 그릴로는 잠깐 TV 블랙코미디쇼에 출연할 기회를 얻게 된다. 그러나 1600만명이라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자 그릴로의 영향력을 두려워한 정권은 다시 방송 출연을 금지시켰다. 이에 그릴로는 국내외 거리 공연을 통해 시민들과 접촉을 시도했다. 그는 욕설을 섞어가며 정치권을 신랄하게 비판해 대중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인터넷이 보급된 이후 그릴로는 SNS로 영역을 넓혔다. 그는 2000년대 초반부터 블로그를 운영하며 새롭게 정치 운동을 시작했다. 그릴로는 블로그로 정치·경제이슈부터 환경·노동문제까지 모두 다뤄 언론은 그를 ‘키보드 선동가'로 부르기도 했다. 한때 거리 공연은 1년에 100회 이상 열렸으며 이탈리아·영어·일본어 등 3개 국어를 제공하는 그의 블로그는 방문자수 기준으로 세계 10위 안에 들기도 했다.

SNS 활동에 탄력을 받은 그릴로는 직접 민주주의, 부패 척결 등을 강조하며 ‘깨끗한 국회 만들기’ 캠페인을 시행했다. 그가 블로그 회원들에게 소조직을 만들어 행동하자고 조언해 세계 각국에서 소조직도 만들어졌다. 2007년 그릴로는 정부 정책의 투명성을 요구하며 V-데이(Vaffanculo Day·엿 먹이는 날) 축제를 주최했다. 당시 이 집회는 ‘블로그와 SNS를 통한 최초의 이탈리아 대중운동’으로 불리며 200여만명이 참가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 비웃음 샀던 오성운동, 제1야당 올라섰다… 파죽지세로 총선에서도 승리할까

코미디언이었던 베페 그릴로는 방송 출연이 금지된 후 대중을 직접 만나기로 결심했다. 그의 블로그를 통한 소통과 거리공연 전략은 성공적이었으며, 오성운동의 인기로 이어졌다.

2009년 당시 61세였던 그릴로는 오성운동을 창당했다. 오성운동의 주요 취지는 ‘기성정치의 부패 단절’과 ‘유권자들의 직접 민주주의’였다. 오성운동은 전국민 인터넷 무료 제공, 주 20시간 노동, 기본소득 보장, EU 탈퇴, 자유무역 반대 등 포퓰리즘 공약을 내세우며 인기를 얻었다.

그릴로는 기존 정치에 대한 회의감 때문에 오성운동에 당(party) 대신 운동(movement)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는 오성운동을 창립하며 새로운 정치와 조직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인터넷 여론조사, SNS 등을 통해 참여 민주주의를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릴로는 정치인 부패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치인은 국민의 피고용자'라며 ‘임기를 아주 짧게 하거나 재선 이상 하면 안된다'는 입장이다. 그는 부패정치인들은 출마를 금지하고, 모든 정치인의 월급을 삭감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릴로는 또 정당에 선거 자금을 보조금으로 주는 것도 중단해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실제로 오성운동은 선거자금 국고보조를 거부하고 시민들에게 크라우드 펀딩 방식으로 지원을 받았다. 그릴로는 이에 반대하는 당원들은 출당시키며 신념을 지켜나갔다.

초반에 이탈리아 주류 언론과 정치권에서 비웃음만 샀던 오성운동은 2013년 총선부터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당시 총선에서 오성운동은 25.5%를 득표하며 제2당(제1야당)에 올랐다. 군소정당이 난무하는 이탈리아의 정치 상황을 고려하면 창당 4년만에 놀라운 성과를 낸 셈이다.

이어 6월 지방선거에서도 로마(비르지니아 라지)와 토리노(키아라 아펜디노)에서 여성 시장을 배출하며 저력을 과시했다. 최근 오성운동은 개헌안 반대 운동을 통해 국민투표 부결을 이끌어내는 데 일조했다.

오성운동이 인기를 끈 요인은 이탈리아를 강타한 경제 불황과 관련이 있다. 이탈리아는 수년간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하다가 지난해 경제성장률 0.8%로 겨우 플러스에 올라섰다. 이탈리아의 실업률은 11%를 웃돌고, 청년 실업률은 40%에 육박해 유럽 연합 평균(18.4%)보다 훨씬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맥킨지는 “지난 10년간 이탈리아에서 가구 실질소득이 감소하거나 유지되는 사람들이 97%였다”고 분석했다.

그릴로는 “이탈리아는 완전히 망가졌으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며 “기존 시스템을 버리고 시민혁명으로 나라를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해 인기를 끌었다. 기득권 정치체제에 대한 염증과 경제정책에 회의감을 가지고 있던 국민들은 오성운동에 환호를 보냈다.

그릴로의 인터넷 활용 전략과 거침없는 언행은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다. 그는 트위터에서 225만명의 팔로워를 거느리고 있다. 최근 설문조사 결과, 30%가 총선 때 오성운동을 지지할 것이라고 밝힐 정도로 인기가 늘어 그릴로는 이번 국민투표의 가장 큰 수혜자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 그러나 수권능력 비판 여전해…“그릴로는 지나친 이상주의자”란 비판도

그러나 그릴로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많다. 오성운동 당수였던 그릴로는 2013년 총선에 출마하지 않았다. 과거 그릴로는 차량 운전 사고를 내 3명을 숨지게 해 정치를 해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이에 일각에서는 “정치에 직접 몸을 담그지 않으면서 훈수만 두는 비겁한 사람”이라거나 “대안 없이 비판만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또 그가 지나친 이상주의자이자 대중선동가이기 때문에 이탈리아 민주주의에 위험이 될 수 있다는 비판도 있다. 이탈리아 재정 상황은 크게 좋지 않아 전국민 인터넷 무료 서비스 등 그릴로의 포퓰리즘 공약이 시행되지 못할 가능성도 큰 편이다.

한편 그간 총리가 될 생각이 없다던 그릴로가 최근 “로마가 쥐, 쓰레기, 불법이민자로 뒤덮이기 전에 최대한 빨리 총선을 실시해야 한다”며 권력 욕심을 드러내자, 오성운동이 집권하면 제대로 정치를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도 나오고 있다.

오성운동 지지자들은 EU 탈퇴, 세금, 이민자 등에서 각기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다. 앞서 당선된 비르지니아 라지 로마 시장은 환경·교통 관련 공약은 커녕 시정 장악도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오성운동은 좌우에 얽매이지 않고 모든 이슈에서 각각 입장이 달라 효과적으로 정치를 할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전했다.

또 오성운동은 풀뿌리 민주주의 이데올로기를 지지하고 있지만, 실제로 그릴로가 본인 의견을 강요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2013년 총선에서 당선된 오성운동 의원 163명 중 37명이 축출되거나 탈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