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웨이 강가푸르나 원정대 김창호 최석문 박정용은 7일간 알파인스타일로 강가푸르나 남벽에 코리안웨이 신 루트를 개척했다. 이는 우리 산악인이 1962년 히말라야 진출한 이래 알파인등반 스타일로 개척한 가장 높은 봉우리였다. 얇게 얼어붙은 수직빙벽을 선등하는 김창호 대장.

급 14좌 무산소 완등 이후, 나는 어떤 길을 가야 할지 고민했다. 누군가는 잭 런던(Jack London)이 쓴 을 읽고 벅(Buck)의 모습을 모델로 삼았다지만, 미지에서 나침반처럼 바른 길을 알려주는 지표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결국 히말라야와 같은 고봉에서 내가 산악인으로서 하고자 했던 등산 본연의 정신에 자문했다.

자신의 한계, 불확실성, 불가능, 길이 끝나는 곳에서부터의 순수한 탐험과 모험 등 깊이 숙고하지 않고 내뱉었던 말들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답에 이르렀다. 그래야 산악인이라는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코리안웨이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지금까지의 등반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지구상에 남아 있는 아직 인간이 오르지 못한 미등정봉과 고산거벽에 자연스러운 하나의 선을 만드는 프로젝트이다. 고정로프 없이, 캠프 없이, 짐을 옮겨다 주는 고소등반 셰르파 없이, 모든 보조적 장비와 인력의 도움 없이 등반자 스스로의 힘으로 자기책임 하에 오르고자 했다.

앞으로 몇 년간 추진하게 될 코리안웨이를 위한 지구상 오지 곳곳의 산을 찾아 선정하는 데 여러 가지 검증과정을 거쳤다. '산까지의 접근은 탐험의 가치가 있는가?' "산이 원주민에게 어떤 의미를 가졌는가?' '등반라인은 자연스럽고 스마트(Smart)한가?' '알파인 스타일로 고난이도 신 루트 개척이 가능한 등반선인가?' 1차·2차·3차에 걸쳐 고르고 골라 낙점된 첫 번째 봉우리는 네팔의 강가푸르나(Gangapurna·7,455m)와 그 서쪽에 솟은 아샤푸르나(Asapurna·7,140m)였다.

원정등반에서 첫 번째 난관은 베이스캠프 진입이었다. 폭포처럼 떨어지는 강물 위에 20여 m의 티롤리안 브리지를 만들어서 짐과 포터를 건너게 했다.
아샤푸르나 남벽의 6,300m 고도의 아이스폴을 오르는 최석문. 최석문은 아이스클라이밍 국제루트세터이며 국내에서 크랙 등반의 선구자로 활동하고 있다.
강가푸르나 서쪽에 솟은 아샤푸르나는 아직 미등정봉이다. 대원들은 남벽 직등루트로 4박 5일간 정산 능선까지 오르고 하산했다. 정상까지 걸어서 100여 m를 남겨두고. 정상은 원정대의 목표였지 목적은 아니다.
아샤푸르나 남벽의 빙설벽을 연등 방식으로 오르는 최석문과 박정용. 박정용은 전 스포츠클라이밍 국가대표였으며 2008년 김창호 대장과 함께 마칼루를 등정한 등반가다.
최석문과 박정용은 자신의 한계까지 밀어 붙였다. 정상 능선으로 한 걸음 내 딛는 사이 뒤에서 마차푸차레(6,993m)가 구름을 뚫고 솟구쳤다.
6,800m 암벽의 아래 얼음을 깎아 내고 눈을 쌓아 제3비박지의 잠자리를 마련했다. 3명이 엉덩이를 걸치고 다리는 허공에 내밀었다. 기온은 영하 18~20℃였다.
남벽으로 이어지는 빙하는 벽 못지않게 험난했다.
등반 4일째 80~90도 암벽 면에 얼어붙은 빙벽을 9피치 더 올랐다.
5일간 시바 신의 머릿결을 타고 강가푸르나 정상에 올라 코리안웨이는 완성되었다. 많은 체력 소모, 굶주림, 영하 18~20℃의 추위에 노출되어 있었다.
강가푸르나 남벽 아래 캠프지(6,000m). 남벽 신 루트 등반에 성공한 최석문, 박정용 대원이 철수에 앞서 장비를 챙기고 있다.
경사가 수그러드는 7,100m의 정상부로 빠져나가는 빙벽을 오르는 김창호 대장.
출국 전에 그린 강가푸르나 코리안웨이 루트개념도. 실제 등반도 같은 라인으로 이루어졌다.

글/김창호 노스페이스, 월간산 기획위원
사진/원정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