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신당동의 한우 전문점 '하누에뜰'은 올해 초부터 10명 이상 단체 예약 손님들에게 계란찜이나 된장찌개 등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예약을 지킨 데 대한 감사 표시다. 3회 이상 예약을 지킨 고객들에게는 창가 좋은 자리를 우선 배정한다. 160석 규모의 이 식당은 단체 예약을 받으면 손님 수에 맞춰 미리 고기를 썰어놓고 샐러드와 밑반찬도 테이블에 차려놓는다.

이 식당 대표 이용금씨는 "만일 10~20명 되는 단체 손님이 예약해놓고 오지 않으면 한 사람 5만원씩 50만~100만원 상당의 고기와 식재료를 버릴 수밖에 없다"며 "예약을 지켜주는 고객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노쇼(No-Show·예약 부도)'로 손해 보는 것보다 이익"이라고 말했다. 이런 방식으로 이 식당은 예약 부도 비율을 작년 10%에서 올해 5~6%까지 낮췄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프렌치 레스토랑‘팔레 드 고몽’의 1년 2개월 전과 최근 모습. 지난해 9월 23일엔 저녁 식사를 예약한 15팀 중 11팀이 아무 연락 없이 나타나지 않아 식당이 텅 비었다(왼쪽). 반면 1년여 뒤인 지난 3일 저녁엔‘노쇼’고객이 없어 15개 테이블이 꽉 찼다.

["노쇼는 업주에게 피해주는 행동" 인식 확산]

본지와 공정거래위원회가 전국 서비스업(식당·미용실·병원·고속버스·소공연장) 사업장 200곳을 대상으로 공동 설문 조사를 한 결과 식당 예약 부도율은 지난해 20%에서 올해 15%로 떨어졌다. 특히 예약 손님만 받는 프렌치·이탈리안 레스토랑의 노쇼 비율은 같은 기간 30~40%에서 21%로 낮아졌다.

노쇼 줄자 업주·손님 윈윈(win-win)

예약을 지키는 문화가 정착되면 업주만 웃게 되는 것이 아니다. 노쇼가 줄수록 고객도 더 나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상당수 식당과 병원, 미용실 등은 높은 예약 부도 비율 때문에 정원을 초과해서 예약을 받는 '오버 부킹(overbooking· 초과 예약)'을 관행으로 해왔다. 경기 고양시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김모(49)씨는 "추석·설 같은 대목에는 40~50%에 이르는 예약 부도를 감안해 정원을 10~20% 초과해서 예약을 받아왔다"고 했다.

허수(虛數) 예약의 피해는 다른 손님들에게 돌아갔다. 예약석이 텅 비어 있어도 앉지 못하고 줄을 서서 다른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대기업에 다니는 정모(38)씨는 "예약이 꽉 찬 식당에서 30분을 기다려 앉았는데, 바로 옆자리 예약석이 식사가 끝날 때까지 비어 있었다"며 "주인에게 '이럴 거면 예약을 왜 받느냐'고 화를 냈다"고 했다.

식당들이 노쇼로 입는 손실을 다른 손님들에게 떠넘기는 경우도 많았다. 서울 중구의 한 한정식집은 "노쇼가 심할 때는 각종 나물과 야채, 샐러드 등 미리 준비한 반찬을 버리기 아까워 다른 손님들에게 내놓기도 했다"고 했다. 이 식당의 예약 부도율은 올 들어 절반 이하로 감소했다. 이 식당 관계자는 "예약 부도가 줄어든 만큼 손님들에게 더 신선한 음식을 내놓을 수 있게 됐다"고 했다.

한국외식업중앙회 관계자는 "예약 부도 감소는 업주와 손님에게 서로 좋은 일이다"며 "예약을 잘 지키는 손님들에게 좋은 좌석을 배정하고 디저트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소가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막판 취소와 부분 노쇼도 줄여야

본지가 만난 식당 업주들은 "한국의 예약 문화가 나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고쳐야 할 점이 많다"고 했다. 예약 시간을 불과 10~20분 앞두고 "못 가겠다"고 통보하는 '막판 취소'나 20~30인석을 예약해놓고 예약 인원보다 훨씬 적게 나타나는 '부분 노쇼'도 여전히 심각하다. 부산 초량동에서 중식당을 운영하는 김모(45)씨는 "예약은 15명으로 해놓고 실제로는 10명만 와서 음식 7인분만 주문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며 "이럴 때 업주에게는 예약 손님 절반이 안 온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