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진 산업1부 기자

2013년 10월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장. 수입차 업계 담합을 따지겠다는 상임위에 불려나온 임준성 한성인베스트먼트 대표는 3시간을 기다려 이런 질문을 받았다. "한성인베스트먼트와 한성자동차가 같은 회사 아니냐." 임 대표는 "우리는 부동산 임대 회사이고, 자동차와 전혀 관계가 없다"고 답했다. 그날 국회에서 임 대표가 한 대답은 그게 전부였다.

이번엔 2015년 국정감사. 국회의원들은 롯데 형제 분란과 관련해 지배 구조와 순환 출자에 대해 묻겠다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불러냈다. 그런데 엉뚱한 질문이 이어졌다. 한 의원은 "지역구에 있는 계양산에 롯데가 골프장을 건설한다며 통행을 막아 등산객들이 불편을 겪는다"며 민원 해결을 요구했다. 신 회장이 즉답하지 않자 의원은 "고집을 부릴 거냐"고 다그쳤다. 또 다른 의원은 신 회장의 출생지가 일본임을 들어 "한국과 일본이 축구 시합을 하면 한국을 응원할 거냐"고 물었다.

증인 신청을 신중하게 하는 것 같지도 않다. 몇 년 전 한 대기업은 회장이 국감 증인으로 불려나가게 되자 국회의원 후원회장을 찾아갔다. 소위 '말발'이 가장 확실하게 통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후원회장의 납품 민원을 들어주면서 부탁했더니 증인 신청을 철회하더라." 이 회사 임원의 증언이다. 이러다 보니 국정조사 때마다 무용론이 나온다.

11월23일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최순실 국정조사특위)가 전체회의를 열고 청문회 등 향후 일정과 증인 출석 문제 등을 논의했다. 김성태 위원장이 안건을 의결하고 있다.

지금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6일 예정된 최순실 사건 국정조사 청문회 준비에 정신이 없다. 해당 기업 법무·대관(對官)·홍보실은 현업 부서들의 협조를 받아 수백 쪽에 이르는 질문·답변지를 만드느라 법석이다. 계열사 사장과 임원들은 아는 의원들을 찾아다니며 질의 내용과 수위를 조절해달라고 사정하기 바쁘다. 대부분 기업 총수들은 예상 질의와 모범 답안을 외워가며 모의 청문회를 하고 있다. 일부 기업은 지하철·버스 요금까지 예상 질문에 넣었다. 이전 기업 청문회를 돌아보면 본질과 상관없는 황당한 질문을 받고 당황하거나 호통형 질문에 면박을 당하는 일이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노심초사하는 건 청문회가 총수 개인의 망신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는 우려 때문이다. 청문회 장면이 해외에 생중계되고 유튜브를 통해 수없이 재생되고 그 과정에서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부어 외국 축구단을 후원하고 수퍼볼 광고에 참여하면서 끌어올린 기업 이미지가 순식간에 추락할 수 있다.

물론 국회는 관련 법에 따라 중요 현안 진상을 규명하고 조사할 수 있다. 의원들에겐 이번 국정조사를 통해 국민이 가진 의혹을 풀어줘야 할 의무가 있다. 기업 총수라도 범법 행위를 했다면 조사 대상이 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과거 경험으로 볼 때 기업인들을 마구잡이로 불러 진상 규명보다는 자극적인 발언으로 존재감을 과시하려는 의원들이 있었다. 이번에도 그랬다간 역풍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경제 상황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시기다. 부디 이번만은 기업인들 망신 주는 자리가 아니라 진실을 규명하는 청문회로 기억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