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웅 Books팀장

김현진이라는 이름을 들어보셨는지요. 스스로는 '글 쓴다'는 소개가 민망해, '글씨 씁니다'라고 얼버무리는 소심한 에세이스트. 이번 주 그가 펴낸 소설 '말해봐 나한테 왜 그랬어'(박하 刊)를 읽었습니다. 신인 작가 김나리와 함께 쓴 소설입니다. '육체탐구생활' 등 산문집은 여러 권 썼지만 소설 창작은 처음. 몇몇 흥미로운 생각할 거리를 던집니다.

우선 픽션과 논픽션의 구분. '사생활을 팝니다'라는 비난이 있을 만큼, 때로 그의 산문은 지나친 솔직함으로 독자를 고문합니다. 오해를 무릅쓰고 요약하면, 그는 화장한 아버지의 뼛가루를 들이마셨던 이야기를 쓴 적이 있죠. 가난한 개척 교회 목사로 50대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 유골을 어디에 모실까를 두고 집안싸움이 벌어졌다죠. 맥락 건너뛰고 전달하면, 모친이 다른 용도 그릇에 임시로 모셨던 아버지 골분을 딸이 새로 산 예쁜 통으로 옮겼고, 그 그릇을 헹구다가 한때 아버지였던 가루를 버릴 수 없어 들이마셨다는 엽기적 이야기. 그는 아르바이트와 대출로 등록금과 의식주를 해결해온 세대라고 했습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대학원에서 소설을 배울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죠. 소설 습작 숙제를 받았는데, 당시 다니던 회사의 믿기 힘든 처우와 경험을 썼답니다. '아버지의 뼛가루'에는 못 미칠지 모르지만, 또 하나 믿기 힘든 현실. 당시 그의 스승은 소설가 김경욱. 스승은 '세상에 이런 회사가 어디 있냐'고 소설의 개연성(蓋然性)을 지적했고, 제자는 '실제 우리 회사 이야기예요'라고 대답했다죠.

작가는 지어내고 꾸며내려 할 때마다 번번이 더 황당한 일들을 현실에서 마주치고는 결국 참지 못하고 그걸 썼다는군요. 아시다시피, 지금은 현실이 소설의 상상력을 압도하는 세상. 그러니, 30대 두 여성이 받은 차별과 연대에 대한 이번 작품 '말해봐…'에도, "세상에 이런 일이 어디 있냐"고 되묻지는 못하겠네요. 참, '썸'과 '사랑'에 대한 새로운 분류, 그리고 '카톡 소설'이라는 새 형식을 소비하는 즐거움은, 이 책을 읽는 또 하나의 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