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섭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과학기술사

"당신은 열역학 제2법칙을 설명할 수 있습니까?" 영국의 과학자, 작가, 행정가로 널리 알려진 C.P. 스노우 경이 이른바 '문인'들의 모임에서 던진 질문이다. 스노우는 이를 과학자들에게 "당신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은 일이 있습니까?" 라고 묻는 일에 비유했다.

하지만 문인들은 그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스노우는 이 거대한 간극을 '두 문화'라고 불렀고, 1959년 케임브리지 대학교 연례 리드 강연의 제목으로 삼았다. 스노우의 주장은 당시 서구 사회에서 상당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가령 물리학에 대해 말하자면, 과학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이 지식인들은 신석기 시대의 선조와 같은 통찰력밖에 없다는 것이다.

스노우는 멀어져만 가는 '두 문화'의 문제가 2차대전 이후 영국의 쇠퇴를 더욱 가속시킬 것이라고 믿었다. 당시는 20세기 초에 시작된 양자혁명으로부터 비롯된 과학적 기술의 발달로 전자공학, 원자력 발전, 오토메이션 등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던 시기였다.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과학 선진국들은 첨단 기술 분야에서 더욱 앞서나갈 것이고, 아시아와 남미의 저개발국들 역시 빠른 속도로 뒤쫓아 올 것이었다.

이렇듯 급변하는 국제 환경 속에서 스노우는 만시지탄(晩時之歎)을 느꼈다. "우리의 조상이 재능 있는 사람들을 인도 제국에 보낸 대신에 산업혁명에 투자했더라면 우리의 현재는 좀 더 건전해졌을 것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렇게 보면 스노우의 '두 문화'는 한국인에게도 매우 익숙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고등학교 때부터 문과와 이과로 나누어 수업을 하고, 대학에서도 인문계 학과로 진학하게 되면 수학·과학은 쳐다보지도 않으니 말이다. 그의 주장은 일견 최근 한국 대학에서 인문계를 축소하고 이공계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에 근거를 제공한다고 읽을 수도 있다.

실제로 스노우는 당시 과학계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홍보 담당'(public relations man)에 불과하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독법은 스노우를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이다. 그는 과학이 의심의 여지없이 폭넓은 문화의 일부라고 믿었다. 나아가 두 문화가 만나는 지점에서 새로운 창의성의 기회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50여 년 전 영국 지식인이 제기한 문제를 오늘날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