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도킨스 자서전(전 2권)|리처드 도킨스 지음|김명남 옮김|김영사|각 396쪽, 616쪽|각 1만9500원, 2만4500원

어느 과학자라도 좋으니 이번 주말에 그(그녀)의 전기를 단 한 권만 읽도록 허용되었다고 해보자. 여러분은 누구에 관한 책을 집어 드시겠는가? 이 뜬금없는 질문을 스스로 던져본다. 나는 별다른 고민 없이 찰스 다윈 자서전이나 칼 세이건 평전쯤이라고 대답했을 것 같다. 적어도 지난주까지는 말이다.

이 풍전등화 속에서 한가로이 과학자의 두 권짜리 자서전을 읽는다는 것이 사치일 수 있다. 그런데 '이기적 유전자' '만들어진 신'의 저자이자 탁월한 진화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의 자서전이 이번 주에 국내에서도 번역·출간되었다. 출간 시기를 저울질하던 출판사가 고민을 했겠지만, 나 같아도 같은 결론을 내렸을 것 같다. "도킨스의 자서전이니 이 시국에 한 줄기 빛이 될 수도!"

사실 국내에 도킨스를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라고 소개하는 것은 셰익스피어가 '로미오와 줄리엣'의 저자라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지루한 일이다. 그는 옥스퍼드 대학의 동물행동학 교수를 역임했고, 유전자의 눈높이에서 인간의 행동을 설명한 '이기적 유전자'를 비롯한 13권의 세계적 베스트셀러를 썼으며(총 1000만부 이상), 매년 각종 미디어에서 세계 최고의 지식인으로 선정되곤 하는 대중적 지식인이다. 이제 이 정도는 대개 안다.

하지만 그에 대한 학계의 첫인상은 "찌르면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지식인 계열이다. 물론 그의 지성은 "탁월하고, 도발적이며, 경이롭기까지"하다. 하지만 한 인간으로서 그의 삶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결혼을 세 번 했다는 정도(칼 세이건과 동률)? 이런 맥락에서 도킨스 자서전은 지상에서 뇌가 가장 섹시한 한 남자의 일기장이다.

리처드 도킨스(위)와 그가 ‘나의 영웅들’이라고 부른 과학자들. (아래 왼쪽부터) 찰스 다윈, 니코 틴베르헌, 칼 세이건, 피터 메더워.

자서전은 두 권으로 되어 있는데 1권에서는 그를 지식계 스타로 만들어준 '이기적 유전자'의 출간 시점까지를 다루고 있다. 여기서 그는 "옥스퍼드가 나를 만들었다"고 고백하는데, 이 말은 그 대학의 독특한 교육 방식인 튜터(개인 지도) 제도를 통해 이해된다. 대규모 강의가 아닌 1대1 맞춤 지도. 품은 많이 들지만 뛰어난 인재를 발굴하는 데 효능이 입증된 방식이다. 그는 "몇 가지 주제에 대해서 세계적 권위자가 되어보는 짜릿한 경험을 했다"고 말하면서, 작금의 교육 현실에 대해 "수업의 목적은 정보 전달이어서는 안 된다. 강의는 생각을 고취시키고 자극해야 한다"고 일갈한다. 서울대 학생 중에서 A+를 받는 이들은 대개 교수의 강의를 농담까지 그대로 받아 적는 학생들이라는 연구 결과가 생각난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우리는 한국의 도킨스를 보기 힘들 것이다.

자, 그렇다면 그의 출세작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계속되는 정전 때문이었단다. 그 때문에 컴퓨터를 활용한 연구를 잠시 접고 글을 쓸 수밖에 없었다. 독창적 생각과 적확한 표현을 기르려면 한 가지에 몰입할 수 있는 여건이 필요하다. 그의 책을 읽다 보면 기가 막힌 비유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그런 비유의 발명은 멀티태스킹의 산물이 아니었다.

2권은 35세 이후, 그러니까 첫 타석을 만루 홈런으로 장식한 다음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1권에 비해 더 친숙한 이름들이 많이 등장하지만, 한 줄로 요약하자면, "내 옆에는 늘 이런 탁월한 동료들이 있었다오"다. 그와 과거를 동행하다 보면 과학자에 대한 우리의 편견이 깨진다. 흔히 과학자는 실험실에 틀어박혀 바깥세상에 어떤 일이 벌어지든 상관없이 오로지 자신의 호기심만 채우려고 몰두하는 괴짜들로 생각되곤 한다. 전혀 그렇지 않다. 그들도 사회적 존재로서 비슷한 고민을 하며 살아가는 인간들이다. 다만 자신의 전문 분야에 대한 더 깊은 앎을 원해 더 깊이 파고 또 파는 사람들이다.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진화생물학

그런데 도킨스가 여느 과학자들과 차이나는 대목들도 눈에 띈다. 그는 자신의 책들이 다른 과학서들과 더불어 우리 문화의 지형을 바꾸는 데 기여하길 바랬다. 이 문장이 그가 책을 쓰는 이유를 요약한다.

"과학 전문가가 제 분야와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을 위해서 쓴 책, 그렇지만 일반 독자들도 어깨너머로 함께 읽을 만한 문장으로 쓰인 책이다. 어쩌면 나도 그런 '제3의 문화'를 여는 데 한몫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는 비합리, 부조리와 타협하지 않는 전사였다. 칼 세이건 이후로 도킨스보다 미신과 치열하게 싸워온 과학자는 없다. 종교에 유통기한이 지났다고 주장하며, 초자연적 세계관을 신봉하는 이들과 진흙탕 싸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차원에서는 칼 세이건을 능가한다고 생각한다. '만들어진 신' 같은 책이나 '만악의 근원'과 같은 다큐멘터리는 그 자체로 과학자가 이 사회를 향해 할 수 있는 극강의 도발이었다. 단연코, "어둠을 밝히는 촛불과 같은 길을 걸어온"이라는 수식어가 가장 어울리는 과학자이다. 만일 그가 한국의 과학자였다면 광화문에서 무엇이라 외쳤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