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차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위대가 청운동 인근에서 경찰 병력과 대치하고 있다.

26일 5차 촛불집회에서 집회 참가자와 경찰이 가장 첨예하게 맞선 지점은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이었다. 이곳은 청와대에서 직선거리로 불과 200m 떨어진 곳으로 ‘청와대 턱밑’까지 대규모 인파가 행진한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애초 경찰은 행진을 허락하지 않았지만, 법원은 “지난 몇 주간 보여준 시민들의 질서 있는 집회문화를 보면 안전사고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며 행진을 허용했다. 다만, 안전사고 위험을 들어 해가 저물기 전이 오후 5시30분까지로 시간을 제한했다.

그러나 이날 효자동·통의동 일대는 밤늦도록 집회 참가자와 경찰의 대치가 이어졌다. 큰 충돌을 없었지만, 이따금 청와대 방향으로 더 나아가려는 참가자와 이를 저지하는 경찰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시민들이 청운동 인근에서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을 격려하기 위해 따뜻한 음료와 물품을 제공하고 있다.

촛불집회를 주최한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 측은 오후 4시쯤 행진을 시작해 청운효자동 주민센터에 집결했다. 이날 광화문 광장에서 출발해 오후 4시5분쯤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 다다른 시위대는 '이게 나라냐' 노래를 틀고 본격적인 집회를 시작했다.

시위대는 경찰통제선 바로 앞에 '자유발언대'를 마련해 직장인, 고등학생, 주부, 초등학생, 인터넷방송BJ 등 시민 12명이 올라와 3분씩 발언하는 시간을 가졌다.

또한 세월호 유가족도 세월호 희생자들을 기리는 대형 돌고래 인형을 들고 집회장에 합류하여 “세월호 인양하라” “대통령의 7시간을 명확하게 규명하라”고 외치며 파도타기를 실시하기도 했다.

제5차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청운효자동 인근에서 경찰 폴리스라인과 대치하고 있다.

시위대는 법원이 명령한 집회 종료 시각인 오후 5시30분이 지나서도 행사를 계속 이어갔다. 경찰은 오후 5시32분부터 “시위대는 이제 해산해달라”고 방송을 내보내기 시작했고, 시위대는 “경찰은 경거망동하지 마라.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고 외치며 앰프로 노래를 틀고 집회를 계속했다.

이어 오후 6시에 시작된 광화문 광장 본 집회를 앞두고 대부분의 시위대가 청운효자동 주민센터에서 발걸음을 돌렸다. 그러나 200여명이 돌아가지 않고 경찰과 대치했고, 경찰은 "시위대는 집회시위법을 위반했으며 계속 해산하지 않으면 경찰력을 투입할 수밖에 없다"고 안내 방송을 내보냈다. 그러나 시위대는 “우리가 물러날 이유가 없다”며 '불법경찰 물러가라 폭력경찰 물러가라' 구호를 함께 외치며 자리에 남았다.

경찰은 오후 6시40분쯤부터 경찰 병력이 대오를 이뤄 방패를 미는 방식으로 시위대 해산을 본격적으로 시도했다. 경찰 지휘부는 “말로 설득하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가라”고 대원들에게 지시했다.

제5차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청와대방향 행진을 가로막는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그러나 청소년녹색당 소속이라 밝힌 20대 시위대 20여명과 신학대 학생 50여명이 신교동 로터리까지 밀려나오면서도 서로 팔짱을 껴 인간띠를 만들며 경찰 해산에 불응했다. 일부 시민은 ‘9년 만에 청운동이 뚫렸다’며 시위대를 격려하는 물품을 제공하기도 했다.

5차 촛불집회의 본 행사였던 광화문 집회가 오후 6시에 시작돼 8시에 끝나자 시민들은 다시 청운동과 삼청동으로 방향을 나눠 청와대 쪽으로 행진을 시작했고, 경찰은 통의로터리에 차벽과 경찰력을 집중배치해 ‘최후 저지선’을 만들고 시위대와 대치했다.

시위대가 청와대 경비를 서는 경찰을 안아주는 훈훈한 광경도 있었다. 오후 10시50분쯤 일부 시위대가 경찰을 향해 들고 있던 피켓을 던지자 여러 시민이 “비폭력” “하지 마라”라고 외치며 저지했다. 시위대 맨 앞에 있던 몇몇 시민은 “늦게까지 고생한다”면서 두 팔을 벌려 전경들을 안았고, 경찰들은 그제야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