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혁명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 타계

쿠바 공산혁명 지도자인 피델 카스트로(90) 전 국가평의회 의장이 25일(현지시간) 밤 사망했다고 국제 주요 언론이 쿠바 현지 언론을 인용해 일제히 보도했다.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은 자신의 형인 피델 카스트로가 25일 밤 10시29분 세상을 떠났다고 26일 TV를 통해 발표했다. 라울 카스트로 의장은 26일 피델의 유골이 유언에 따라 화장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피델 카스트로의 최근 모습은 올해 9월 쿠바를 방문한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와 면담하는 장면이 쿠바 국영매체에 소개된 게 거의 마지막이었다. 그는 90세 생일이었던 지난 8월 13일에도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4월 아바나에서 열린 쿠바 공산당 제7차 전당대회 폐회식에 참석해 “나는 곧 아흔살이 된다. 곧 다른 사람들과 같아질 것이며, 시간은 모두에게 찾아온다”며 죽음을 암시하는 ‘고별사’를 남기기도 했다.

1926년 스페인 출신 이주민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변호사로 활동하던 1953년 바티스타 독재정권을 타도하려고 몬카다 병영을 습격했다가 실패해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았다.

석방된 이후 중남미 지역의 혁명 지도자로 활동하며 쿠바 혁명을 추진했다. 그는 멕시코에서 당시 쿠바의 바티스타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무장 조직을 건설했고 1956년 체 게바라 등과 함께 쿠바를 공격했다.

그는 1959년, 당시 미국의 지원을 받던 쿠바의 바티스타 독재정권을 전복시킨 뒤 반미 정권을 수립하고 총리에 취임, 1976년까지 재임했다. 이후 1976년부터 국가평의회 의장을 지내다가 2008년 동생 라울 카스트로에게 권좌를 넘기고 물러났다.

카스트로는 2006년부터 장출혈로 수술을 받는 등 노환으로 건강이 악화됐고 2011년에는 마지막으로 갖고 있던 공산당 제1서기직까지 동생에게 물려줬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 집권한 지도자’(52년 2개월)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카스트로가 통치한 쿠바는 1991년 소련 붕괴 이후에도 유럽·남미·아프리카의 자본주의 국가와 적절히 협의하는 외교 전략을 구사하며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를 유지했다. 같은 공산국가임에도 패쇄·고립 정책으로 극심한 식량난을 초래한 북한과는 대조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약소국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복지 제도를 심도 있게 운영한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장기 집권한 독재자였다는 부정적인 평가가 공존하지만, 쿠바와 중남미에서는 ‘혁명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로이터는 카스트로의 사망 소식을 전하면서 “녹색 군 전투복을 입고 시가를 문 모습은 물론 미국을 겨냥한 독설로 채워진 연설로 유명했다”고 보도했다.

카스트로는 생전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과 회담하기도 했다. 자신의 자서전에서 “노련하고 의심할 여지 없는 전사인 김일성이 AK소총 10만정과 탄약을 단 1센트도 받지 않고 보내줬다”고 밝힐 만큼 북한 김일성 정권과의 교분이 두터웠다.

2013년에는 쿠바 국영 매체를 통해 “쿠바는 북한과 동맹국”이라면서도 “지금의 한반도 전쟁 위기는 50여년 전 쿠바가 연루된 1962년 10월 위기 이후 최대 핵전쟁 위협”이라며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벌어질 수 있는 한반도 전쟁을 우려하기도 했다.

미국과 쿠바는 2014년 12월 53년간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국교를 정상화하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2015년 8월 아바나 주재 미국 대사관이 재개설됐고, 올해 2월 두나라를 오가는 정기 항공노선까지 재개통했다. 이어 올해 3월에는 쿠바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대통령과 그의동생 라울 카스트로 간의 미-쿠바 정상회담이 88년만에 이뤄졌다.

카스트로는 말년에 국가 공식 석상이나 외국 정상과의 만남 자리에서 아디다스 트레이닝복을 즐겨 입어 세계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