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에 관하여

율라 비스 지음 | 김명남 옮김
열린책들 | 312쪽 | 1만5000원

자식을 불멸의 존재로 만들고 싶었던 여신 테티스. 테티스는 어린 아들 아킬레우스를 스틱스강에 거꾸로 담근다.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강물이 지닌 영험(靈驗). 하지만 하필 아기의 발뒤꿈치를 붙잡은 터라, 죽지 않는 신체에 유일한 취약점이 남았다. 이후는 우리가 알고 있는 바다.

그리스 신화로 시작하는 '면역에 관하여'는 문학과 과학, 혹은 과학과 저널리즘 사이의 매혹적 에세이다. 주지하다시피 면역은 우리의 몸이 감염이나 질병에 대항하여 병원균을 죽이거나 무력화시키는 작용. 모두에게 예외 없이 중요하지만, 과학자 사이에도 설명이 까다로운 학문이다. 하지만 독자들은 두 가지 사실에 고마워해야 할 것 같다. 하나는 저자 율라 비스(39)가 의사 아버지와 시인 어머니의 좋은 유전자만을 물려받은 논픽션 작가라는 점. 또 하나는 일곱 살 아들의 어머니인 그가 테티스 못지않은 모성애를 지녔다는 점이다. 2014년 미국에서 출간된 이 책은 뉴욕타임스와 LA타임스 등의 그해 '올해의 책'으로 꼽혔고, 요즘은 다독가(多讀家)로 더 명성 높은 MS 창업자 빌 게이츠와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도 앞다퉈 추천서를 쓰게 만들었다. "나는 이 책을 읽는 것이 얼마나 즐거울지, 또 얼마나 유익할지 짐작도 못 했다. 수년에 걸쳐 백신 연구를 지원하고 공부한 나 같은 사람에게도 말이다"라는 게 빌 게이츠의 고백이다.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스틱스강에 아들 아킬레우스의 발뒤꿈치를 잡고 거꾸로 담그는 어머니 여신 테티스. 영험한 물의 세례로 아들의 불멸을 꿈꿨다. 작가는 앙투앙 보렐 로가(Antoine Borel Rogat).

아킬레우스와 테티스가 면역에 관한 문학적 은유의 시작이라면, 1998년의 앤드루 웨이크필드 논문은 과학적 반증(反證)의 첫 사례다. 홍역·볼거리·풍진의 혼합 백신이 아이들의 자폐증을 일으킬지 모른다는 주장이 그해 유력 의학 학술지 '랜싯'에 실렸다. 자식 가진 부모들은 당연히 두려웠고, 미국의 해당 백신 접종률은 급감했다. 홍역은 근절된 지 오래라고 미국인들은 믿었지만, 이 전염병은 시간을 거슬러 부활했다. 2014년 캘리포니아 등에 발생한 홍역 감염자만 150여명. 이 논문을 발표한 영국 의사 웨이크필드에게 사(邪)가 있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백신 만드는 제약회사와 소송을 벌이던 변호사가 뒷돈을 댔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웨이크필드의 의사자격증은 박탈됐다. 연구 대상 어린이도 12명에 불과했고, 그나마 백신과 자폐증과의 관련 여부도 검증되지 않았다. 논문은 취소됐다.

하지만 사람들은 믿고 싶은 것만 믿는 법이다. 접종(接種)이라는 의학용어의 어원은 "피부를 째서 그 속에 감염성 물질을 집어넣는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병을 막아보자고, 타인의 병 혹은 세균을 내 몸속에 주사(注射)하는 일이 어찌 두렵지 않을까. '오염' 혹은 '불결'의 공포는 그렇게 근원적이다. 그러나 상대방의 근원적 두려움을 일단 인정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데에 비스 글쓰기의 미덕이 있다.

'자연은 언제나 옳은가'라는 질문을 던질 때도 마찬가지. '인공'보다 '자연'을 선호하는 현대인에게 먼저 공감을 표시한 뒤, 윽박지르지 않고 차분한 목소리로 다음 사례를 든다. 예로 드는 책은 미국의 해양생물학자 레이철 카슨이 1962년에 쓴 '침묵의 봄'. 미국 환경보호국의 창설과 살충제 DDT 생산 금지라는 결과를 이끌어낸 환경 서적의 고전이다. 하지만 50년 넘은 시간이 흐른 지금, 새로 알게 된 사실은 아이러니다. DDT는 환경에 오래 잔류함으로써 흰머리독수리들을 죽였지만, '침묵의 봄'은 대중의 뇌리에 오래 잔류함으로써 오늘날 아프리카 아이들을 죽이고 있다는 것. 아프리카 아동 20명 중 1명은 말라리아로 죽고, 그보다 더 많은 아이가 뇌 손상을 입는다. DDT는 안타깝게도 말라리아를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수단 중 하나인데, '살충'과 '맹독'의 이미지가 너무 강하다 보니 대부분의 나라에서 이 화학물질을 생산하지 않는다는 것. 또 혹시 있다고 해도, 이 이름으로 된 살충제를 아프리카에 후원하려는 기부자는 없다는 것. 비스는 이렇게 '천연'과 '자연'으로 포장된 신화에 조심스레 균열을 낸다.

비스는 이런 비유를 든다. '자전거를 탄 나는 절반은 기계, 절반은 인간'. 서로 잘 협조하면 건강하게 스피드를 즐기며 달려나갈 수 있지만, 자칫 실수하면 더 큰 부상 위험에 노출된다. 면역에 관한 태도 역시 마찬가지. 우리 몸은 애초에 수많은 기생생물을 담고 있는 타자들의 집합이며, 살갗은 침투성이 높은 불완전한 경계라는 것. 궁극적으로 인간은 서로의 몸에 빚지고 있으며, 면역은 우리가 공동으로 가꾸는 정원이라고 했다. 정원에는 열매도 있지만 가시도 있는 법. 백신 무용론이나 백신 회의론에 대한 경멸이나 무시가 아니라, 역지사지(易地思之)와 박람강기(博覽强記)로 백신의 효용을 설득하는 비스의 열정이 사려 깊고 유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