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가운데 가장 젊고 활기찬 이미지였던 존 F 케네디는 죽은 뒤에야 감춰졌던 사생활이 낱낱이 공개됐다. 재닛 트라벨이라는 첫 여성 주치의를 파격 임명한 것도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케네디의 허리 통증을 기존 의료진과는 다른 식으로 달래줬기 때문이다. 이미 알려졌던 척추 질환 말고도 에디슨병으로 통증이 극심해지자 '닥터 필 굿'이라 불리는 의사 맥스 제이컵슨을 백악관으로 불러들여 강한 진통제와 남성호르몬제를 수시로 처방받았다. '닥터 필 굿'은 마구잡이로 처방하는 돌팔이 의사임이 드러나 나중에 의사 자격을 박탈당했다.

▶국가 지도자들이 질병 같은 인간적 약점을 국민에게 다 드러낼 수가 없는 건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반대로 사생활도 숨길 게 없이 진솔하고 건전하면 국민으로부터 더 많은 사랑과 신뢰를 받는 매력 포인트가 된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일주일에 닷새는 가족과 저녁 식사를 하겠다고 했고, 가능하면 저녁에 2시간 정도는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딸 학교의 농구팀 코치를 맡거나 아빠의 마음으로 돌아가 총기 사고에 희생된 초등학생을 위해 눈물 흘린 모습으로 인해 임기 말년까지 인기가 높다.

[대통령 건강은 국가 기밀인데… 주사제까지 '비선 진료']

▶유럽의 최장수 여성 총리를 목전에 둔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역시 퇴근길에 20년 넘는 단골 수퍼마켓에 들러 직접 장을 본다. 같은 여성 지도자이지만 독신인 박근혜 대통령은 그런 사생활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박 대통령 스스로 "나는 결혼을 하지 않아 가족도 없으며 대한민국과 결혼했다"고 말해왔다. 그래서 자나 깨나 나라 생각만 한다는 이미지로 굳어졌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베일에 싸였던 박근혜 대통령의 사생활이 드러났다. 옷 고르고 머리 다듬고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다니던 단골 의사한테 처방받아오는 일까지, 남자 대통령이었다면 부인이 챙겨줬을 역할을 모조리 최순실씨가 도맡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동안 사생활이 철저히 가려졌던 만큼 국민의 충격은 크다.

▶박 대통령 변호를 맡은 유영하 변호사가 그제 "대통령이기 이전에 여성으로서 사생활이 있다는 점도 고려해달라"고 했다. 같은 여성들도 이 말엔 선뜻 동의하지 못한다. 지금 대통령을 둘러싼 의혹이 끝도 없이 터지는 건 '여성으로서 사생활'을 보장받지 못해서가 아니다. 사생활 속에만 머무르게 했어야 할 인물이 국가원수의 공무(公務)에 개입하고 온갖 비리까지 저질렀기 때문이다. 대통령 스스로 공사(公私) 구분 못 해 벌어진 일인데 투명하게 밝히지도 않고 있으니 의혹이 증폭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