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민주당 전 대표가 11일 박근혜 대통령에게 내치(內治)는 물론 외교·안보 관련 모든 권한까지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문 전 대표는 사흘 전에는 군(軍)통수권·계엄발동권까지 내놓으라고 했다. 추미애 대표도 같은 주장을 했다. 국회 추천 총리가 이 권한들을 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야권에서 거국내각 요구가 처음 나올 때만 해도 외교·안보 분야만은 대통령이 최후까지 책임지고 경제 등 내정(內政)만 국회 추천 총리가 맡아야 한다는 태도였다. 그러다 점점 수위를 높여 이제는 헌법상 대통령의 고유권한 전체를 넘기라고 한다. 정치적 압박인지, 본심인지는 불확실하다. 그러나 이 주장 자체가 이 나라가 처해 있는 현실의 위중함과 위험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옳고 그름을 떠나 국민이 대통령을 거부하는 지금 군통수권과 비상대권과 같은 국가 유지의 바탕을 이루는 권한과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는 명확히 해야 한다. 잘못하면 유사시조차 나라가 마비될 수 있다.

군통수권을 내놓으라는 것은 쿠데타 같은 헌법 파괴 상황이 일어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황교안 총리는 11일 명시적으로 군통수권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대통령만이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넘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새누리당은 문 전 대표의 주장 자체가 반(反)헌법적이라고 했다.

하지만 정치 현실은 1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수십만 시민이 모여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려는 상황이다. 대통령 지지도는 5%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다. 앞으로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대통령 탄핵도 구체적으로 거론될 수밖에 없다. 탄핵 절차가 시작되면 대통령 권한이 정지돼 군통수권 등도 자동으로 총리에게 넘어간다. 그러나 국회 추천 거국 총리가 등장할 경우엔 군통수권이나 계엄선포권을 비롯해 재정긴급명령권, 선전포고권 같은 중대한 권한이 어디에 있는지가 계속 논란이 될 수 있다. 이 논란 자체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북한이 만약 연평도 포격이나 천안함 폭침 같은 짓을 재차 저지르고 나올 때 최고 명령권자가 대통령인지, 거국내각 총리인지 헷갈리는 상황이 온다면 말 그대로 재앙이다.

헌법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군통수권·선전포고권을 넘기는 것 자체가 위헌이라는 주장과 현행 헌법하에서도 가능하다는 주장이 엇갈린다고 한다. 전문가들 의견마저 갈라진다면 대통령과 거국 총리가 정치적으로 합의해 권한의 경계를 명확히 하는 수밖에 없다. 모두가 사욕(私慾)을 버리고 이 비정상적 상황을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