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野圈)이 '최순실 게이트'에 따른 국정 공백을 사실상 방치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정치권에선 나오고 있다.

여야(與野)의 대화나 해법 모색보다는 혼란한 상황을 방치해 대통령과 여권을 고사(枯死)시키며 다음 대선까지 유리한 상황을 끌고 가겠다는 것이다. 야당은 "최순실 게이트를 '총리 인사' 국면으로 덮을 필요가 없다"며 '국회 추천 총리' 논의를 거부했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국민의당 박지원, 정의당 심상정 등 야 3당 대표는 9일 정국 수습 해결책을 논의하기 위해 국회에서 만났지만 결론은 "12일 예정된 민중 총궐기 집회에 당력을 집중해 야 3당이 적극 참여한다"는 것이었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심상정(왼쪽부터) 정의당 대표가 9일 국회 사랑재에서 야(野) 3당 대표 회담을 열었다. 이들은 이날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 추천 총리’ 제안을 거부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거국내각을 위한 총리 인선 문제에 대해 민주당 윤관석 대변인은 "아무런 논의가 없었다"고 밝혔다. 정국 혼란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자리가 '촛불 집회 출정식'으로 끝난 것이다.

야권은 최순실 파장이 커진 지난달부터 청와대와 새누리당에 사태 수습을 위한 선결 조건을 요구하고, 이게 받아들여지면 또 다른 조건을 내놓길 반복해왔다. 여당에서는 "자고 나면 새로운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는 불만이 나왔다. '거국중립내각'은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지난달 26일 가장 먼저 제안했다. 하지만 새누리당이 30일 이를 수용하자 야당은 "최순실 게이트의 진상 규명이 먼저"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지난달 28일 새누리당과 '최순실 특검' 협상을 중단하겠다면서 ▲새누리당의 석고대죄 ▲우병우 민정수석 사퇴 ▲최순실 부역자 전원 사퇴 등 3대 선결 조건을 내걸었다. 지난 4일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은 국회 본청 계단에서 사죄문을 읽고 대국민 사과를 했다. 우 전 수석은 사퇴 후 검찰 조사를 받고 있고 최순실 사건과 관련된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비서관 등은 구속됐다.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 더 추락 11.1%]

지난 4일 박근혜 대통령이 두 번째 사과를 통해 대통령과 정당 대표 회담을 추진할 뜻을 내비치자 추 대표는 다시 ▲별도 특검 ▲국정조사 ▲김병준 총리 후보자 철회 및 국회 추천 총리 수용 등을 회담 조건으로 내걸었다. 박 대통령은 8일 정세균 국회의장을 만나 "국회에서 총리를 추천해달라"며 김 후보자 지명을 철회했다. 별도특검에 대해서도 새누리당은 수용 의사를 밝히고 한발 물러선 상태다. 국정조사를 주장한 야당은 11일 우선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국회 긴급 현안 질의를 하기로 했다.

하지만 국회 추천 총리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야당은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2선 후퇴를 선언해야 한다" "국회 추천 총리 권한을 명시적으로 제시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9일에는 또 다른 조건이 등장했다. 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최순실 국정 농단의 진실을 은폐하려 했거나 비호했던 분이 지도부에 계속 계신다면 우리는 협상하기가 어렵다"며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의 사퇴를 촉구했다.

국민의당 요구 사항이던 대통령 탈당 요구에 민주당도 가세했다. 야당 내부에서조차 "결국 총리 추천 논의 단계까지 가볼 수나 있겠느냐"는 비관적 전망이 나온다. 민주당 고위 관계자는 통화에서 "박 대통령이 한 번에 내려놓지 않고 '찔끔찔끔' 양보를 하는 것이 문제"라며 "최순실 사태를 덮기 위한 국면 전환 포석에 협조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야당은 12일 예정된 두 번째 대규모 촛불 집회를 민심 파악의 척도로 보고 있다. 거리 상황을 보고 '전면적인 정권 퇴진'으로 갈지, 적극적 수습 단계로 갈지 결정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경희대 윤성이 교수는 "87년 6월 항쟁 때도 야권은 전두환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만 몰두하다 차기 민주 정부를 어떻게 끌고 갈 것인지 고민하지 못하고 정권 교체에 실패했다"며 "야당이 국정 책임자로서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 현 상황이 야권에 독배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