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정호성(47·구속)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의 휴대전화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 연설문 등 청와대 문건을 "최순실씨에게 보여주라"고 지시하는 내용을 담은 녹음 파일을 확보한 것으로 9일 알려졌다. 검찰 등에 따르면 녹음 파일엔 박 대통령이 정 전 비서관에게 "자료를 최순실씨에게 보여주고 의견을 들으라"고 말하고, 이후 정 전 비서관은 최씨에게 전화를 걸어 "문건을 보냈다"고 말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이 9일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를 받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리고 있다.

[정호성 "박 대통령 지시로 최순실에 문건 전달"]

정 전 비서관은 최근 검찰 조사에서 수사팀이 휴대전화에 저장돼 있던 이 같은 녹음 파일을 제시하자 "대통령의 지시로 최씨에게 문건을 전달한 게 맞다"며 기밀 누설 혐의를 인정했다고 한다. 정 전 비서관은 앞서 지난달 말 최순실씨의 태블릿PC에 청와대 기밀 문건들이 들어 있는 것으로 보도되자 '최씨를 잘 모른다' '문건은 내가 준 게 아니다'고 했었다. 그러나 압수당한 휴대전화에서 부인하기 어려운 물증이 나오자 백기(白旗)를 들었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날 청와대 문건 유출 문제와 관련해 이재만 전 총무비서관과 안봉근 전 국정홍보비서관의 자택을 압수 수색했다. 두 사람은 정 전 비서관과 함께 박 대통령을 국회의원 시절부터 보좌한 이른바 '문고리 권력 3인방'으로 불린 사람들이다.

검찰은 최근까지 이 두 사람이 문건 유출에 직접적으로 간여했다는 단서는 확보하지 못했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검찰 관계자는 이날 두 사람의 영장 청구 가능성 등을 묻는 질문에 "당장 날짜가 정해진 것은 없다"고 했다. 사법 처리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이재만 전 비서관은 청와대 내부 사이버 보안 등을 총괄하는 직책에 있었다. 그가 승인하지 않으면 청와대의 문서 작성 시스템으로 작성된 문서를 반출할 수 없고, 이메일도 외부로 보낼 수 없다. 극소수에게만 허용되는 개인 이메일 사용은 총무비서관이던 그가 허가해야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이 전 비서관은 정 전 비서관의 '문건 유출'과 관련돼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안봉근 전 비서관은 최순실씨가 청와대를 무단출입할 수 있도록 도왔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그는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인 시절부터 수행 담당이었고, 정권 출범 초기에는 제2부속비서관을 했다.

검찰은 두 사람 외에도 청와대 현직 행정관 등 2명의 자택도 압수 수색했다. 이들은 안종범 전 수석의 증거인멸 시도와 연관됐다는 혐의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정 전 비서관은 박 대통령이나 최씨와의 통화 내용을 녹음할 때 전화기의 자동 녹음 기능 등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전 비서관은 '녹음'을 한 이유에 대해 "지시를 빠뜨리지 않고 이행하기 위해서"라고 진술했다고 한다. 검찰 안팎에선 대통령에게 올라가는 정부의 모든 보고서를 다룬 정 전 비서관의 '수면 부족'도 습관적으로 통화 녹음을 한 이유가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정 전 비서관이 워낙 업무가 많았기 때문에 수면이 늘 부족했고 비몽사몽간에 전화를 받아도 대통령의 지시 사항을 빠뜨리는 일이 없도록 모든 통화를 자동으로 녹음하는 기능을 쓴 것 같다"고 했다. 대통령 지시를 이행하고 전달하기 위해 한 녹음이 자신의 범죄 혐의와 대통령의 관련성을 입증하는 증거가 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