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허리케인 매슈'가 초속 70m 강풍을 몰고 미국 동부 해안을 강타할 때 비행기 한 대가 강풍 속으로 날아 들어갔다. 태풍의 중심을 관통한 이 비행기는 실시간으로 태풍의 이동 경로와 바람 세기 등을 측정한 후 높은 고도로 올라가 촬영한 태풍의 눈을 태풍센터에 전송했다. 미 해양대기청(NOAA)이 띄운 '허리케인 헌터(Hurricane Hunter)'였다.

이 비행기 성능에는 못 미치지만 우리나라도 지난 2013년 태풍에 근접해 바람 세기 등을 관측하는 '다목적 기상항공기' 도입 사업에 착수했다. 태풍은 물론 황사와 집중호우, 대설(大雪) 같은 '위험 기상'과 온실가스·방사능까지 측정할 수 있는 비행기를 올 1월까지 띄우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162억원을 들여 기상청이 4년째 추진해 온 이 사업이 언제 항공기가 도입될지조차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표류 중이다.

기상청은 "지난 2013년 기상항공기 납품 계약을 맺은 민간기업 A사가 당초 납품 기한(2015년 11월)을 넘긴 데 이어 한 번 더 연장한 기한(지난달 6일)도 넘겼다"면서 "계약 불이행으로 총 100억원이 넘는 지체상금(遲滯償金)을 물릴 방침"이라고 3일 밝혔다. 여기에다 A사는 항공기 제작 과정에서 비(非)공인부품을 사용한 사실 등이 드러나 항공기 개조 작업을 하느라 당초 예상보다 60억원이 넘는 비용을 더 쓴 것으로 나타났다.

A사가 납품해야 할 항공기는 17m 폭에, 길이가 14m가량인 미국 제작 비행기에 태풍 관측 등 14종의 기상 장비를 장착한 개조 항공기다. 최대 약 10㎞ 상공에서 위험 기상을 관측할 수 있다.

지난 2013년까지만 해도 A사는 항공기 납품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신 강관·파이프 등을 대기업 등에 납품해 연 매출 1000억원 이상, 영업이익이 연간 수십억원에 이를 정도로 경영 실적이 탄탄한 중소기업이었다. 하지만 '기상 브로커'의 말을 듣고 항공기 사업에 뛰어든 것이 화근이 됐다고 정부 소식통은 말했다.

지난 2013년 2월 기상청이 입찰 공고를 내자 A사는 사업 목적에 '항공기 부품 제조업'을 급하게 추가하고 응찰했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정부 관계자는 "A사가 당시 기상청 고위 간부 B씨와 같은 학교를 나온 기상 브로커를 영입해 이 사업을 시작했다"면서 "실제로 B씨가 A사의 편의를 봐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A사는 결국 2013년 5월 경쟁업체를 제치고 기상청 계약을 따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기상청 간부 B씨는 부적절한 처신이 알려져 사표를 냈다.

A사는 이후 미국의 한 비행기 개조회사에 항공기 개조를 맡겼지만 비공인 부품을 쓴 사실 등이 드러나 지난해 10월 납품을 거부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소식통은 "A사가 미국의 다른 회사에 항공기 개조 작업을 다시 맡겼다"면서 "다음 달 28일까지 납품될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기상청은 A사가 최종 납품할 때까지 당초 납품 기한인 작년 11월 6일 이후부터 매일 2500만원씩 지체상금을 물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음 달 28일 납품할 경우 총 109억원 규모다. 지체상금과 추가 제작비만 해도 벌써 낙찰 사업비(162억원)를 넘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