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기와? 좋죠. 하지만 돈은 없고, 보상비는 쥐꼬리만 하니…."

경북 경주시 황남동에 사는 정모(76)씨는 지난 9월 일어난 규모 5.8 지진의 피해자다. 100㎡(약 30평) 크기인 집 지붕 기와 일부가 떨어져 나갔다. 이후 태풍이 겹치면서 지붕에 비까지 새는 바람에 급히 보수를 했다. 정씨의 집은 피해 규모가 작은 '부분 파손'이라서 정부 보상비는 100만원이 전부였다. 기와를 벗겨 내고 새로 이는 데 드는 비용 3000만원엔 턱없이 부족했다. 정씨는 "전통 한옥의 모양새엔 맞지 않지만 언제 또 지진이 올지 몰라 함석 기와로 보수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 2일 오후 찾은 황남동 한옥들 사이에선 재래식 골기와 대신 함석 기와를 올린 집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신음하는 한옥마을 - 경주 황남동 인근 건물의 기와지붕이 지난 9월 지진으로 파손된 모습(왼쪽 사진). 지진 피해 복구 지역인 황남동 주민센터 인근엔 최근 함석지붕을 인 한옥이 늘고 있다(오른쪽). 철판에 아연을 입힌 함석은 값이 싸고 시공이 간단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골기와의 섬세하면서도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은 구현하지 못한다.

[경주서 규모 2.3 지진…피해 발생 없어]

신라 역사문화미관지구에만 함석 기와를 이은 한옥 30여 채가 등장했고, 계속 늘고 있다. 이 일대는 경주시가 도시계획조례로 재래식 골기와를 사용하도록 엄격히 규제하고 있는 곳이다. 한옥의 형태, 높이, 지붕 모양, 색채 등 새로 짓거나 변경할 때도 허가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어길 경우 건축법에 따라 과태료 부과 등 처벌 대상이 된다.

하지만 지난 9월 지진으로 부서지거나 떨어져 나간 한옥촌 기와지붕을 복구하는 과정에서 주민 상당수가 값싼 함석(철판에 아연을 도금) 기와를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와공업계에 따르면 지붕 3.3㎡(1평)를 이을 때 시멘트가 섞인 일반 기와는 60만~70만원, 흙을 구워 만드는 재래식 골기와는 100만~110만원쯤 비용이 든다. 반면 평당 18만~20만원 선인 함석 기와는 골기와의 20% 수준으로 싸다.

시민과 관광객들은 '천년고도(千年古都) 경주를 상징하는 한옥마을의 품격이 크게 훼손되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에 대해 피해 주민들은 "반면 정부보상금이 너무 적어 함석지붕은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억울함을 드러내고 있다.

2일 경주시에 따르면 경주 강진으로 주택 4996채 중 57%인 한옥 2880여 채에 피해가 생겼다. 특히 신라 역사문화미관지구로 지정된 황남·황오·월성동의 한옥 3500여 채 가운데 1052채(30%)가 파손됐다. 대부분 기와 파손(82%)이었다. 지진 50여 일이 지난 현재 632 채(60%)가 복구됐다.

정부는 경주를 특별재난지구로 선포한 이후 피해 규모에 따라 재난 지원금을 지급했다. 지난달 20일까지 모두 47억원을 전달했다. 그런데 지원금이 450만원인 반파(半破)는 24채, 지원금 900만원인 전파(全破)는 5채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기와 파손, 벽체 균열 등 주로 규모가 작은 지원금 100만원짜리 소파(小破)가 차지했다.

고도제한 지역이나 역사문화미관지구 내의 한옥에 함석 기와를 이면 불법 건축물이 된다. 경주시는 이를 알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형편이다. 시 관계자는 "지진과 태풍으로 잇따라 해를 입은 주민들의 경제적인 어려움을 고려하면 현실적으로 단속하기가 쉽지 않다"며 고충을 털어놨다.

경주 지진·태풍 성금이 피해 주민들에게 제때 지급되지 못한 점도 문제다. 전국 50여 기업과 단체에서 모은 성금은 지난달 말 기준으로 42억7600여만원이다. 이 돈은 아직 전국재해구호협회에 묶여 있다. 협회 측은 이달 말쯤 피해 규모에 따라 가구별로 일괄 지급할 예정이라고 한다. 한 경주 시민은 "대통령이 다녀갔는데도 달라진 게 없다"면서 "경주 한옥마을이 옛 모습을 되찾을 수 있도록 하루빨리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