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을 수사해 온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2일 최순실(60)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적용한 혐의는 '직권남용'과 '사기 미수'다. 검찰은 "기업들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774억원을 출연하도록 강요한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과 최씨는 공모(共謀) 관계"라고 했다. 즉 안 전 수석과 최씨가 함께 '774억 강제 모금'을 주도했다는 것이다. 직권남용은 원래 공무원을 처벌하는 범죄다. 하지만 공무원 신분이 아닌 최씨 같은 사람도 범행에 가담하면 공범으로 처벌할 수 있다.

검찰은 당초 안 전 수석이나 최씨에게 '제3자 뇌물 제공죄'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그러나 검찰 관계자는 이날 "뇌물죄는 적용이 어렵다"고 했다.

현 정권의 ‘비선 실세’로 지목된 최순실씨가 2일 새벽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를 받은 뒤 서울구치소로 가기 위해 청사를 나서고 있다(왼쪽). 이날 오후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비서관도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이곳으로 왔다.

검찰이 최씨와 안 전 수석에게 적용한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다른 사람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경우' 성립하는 범죄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일 수석비서관 회의 등에서 한 발언과 '우리는 피해자'라는 기업들의 입장을 감안한 결과라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박 대통령은 당시 "작년 2월 문화·체육 활성화를 위해 기업인들을 모신 자리에서 문화 융성과 창조경제의 실현을 통한 우리 경제의 대도약을 위해 기업인들의 투자 확대를 부탁드린 바가 있다"며 "기업들이 뜻을 모아 만들게 된 것이 두 재단의 성격"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은 단순히 투자 확대를 당부한 것인데 안 전 수석과 최씨가 '청와대 실력자' '비선 실세'라는 지위를 활용해 기업들로부터 돈을 억지로 뜯어내듯 강제 모금했다는 것이다. 결국 검찰은 미르·K스포츠재단을 만든 목적이 세간의 의혹처럼 '퇴임 후 대비용' 등 박 대통령을 위한 것은 아니며 '문화·체육 사업 지원용'에 가깝다고 본 셈이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검찰이 법 적용을 너무 소극적으로 한 게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다. 대형 로펌의 변호사는 "검찰이 국민 정서는 물론 지금까지 드러난 박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관계와도 거리가 있는 결론을 내린 것 같다"고 했다. 전직 검사장도 "뇌물죄 적용이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대기업들이 낸 돈은 (청와대에 밉보여) 혹여 피해를 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뇌물 성격이 있다는 게 내 생각"이라고 했다. 그러나 검찰 관계자는 "최씨에 대한 엄벌 여론 등을 모르는 게 아니지만, 사건 관련자들의 진술과 자료, 법리적 부분을 모두 검토해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했다. 검찰에선 일해재단 비리로 기소된 장세동 전 안기부장에게도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했다는 점도 이번 결정의 근거로 거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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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권남용죄는 최고 징역 5년형까지 선고가 가능한 범죄다. 공무원 관련 범죄 가운데서는 형량이 낮은 축에 속하고, 무죄가 선고되는 일이 적지 않을 만큼 수사기관의 입증(立證)도 쉽지 않은 범죄다. 이 때문에 법조계에선 뇌물죄 적용이 어렵다면 직권남용이 아니라 강요나 공갈죄를 적용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공갈죄는 10년 이하의 징역까지 선고가 가능하다. 그러나 검찰은 앞으로 수사가 진행되면 여러 가지 혐의가 추가로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입장이다. 최씨는 미르·K스포츠재단 문제 외에도 청와대 기밀 자료 등을 받아본 데 따른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혐의, 정부 예산 전용 등 여러 가지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영장 청구는 일단 최씨의 신병을 확보하는 데 중점이 있는 것"이라며 "조사해야 할 내용이 워낙 많다"고 했다. 검찰은 청와대 기밀자료 유출과 관련해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을 다음 주 소환조사한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 31일 오후 검찰에 출두하던 최씨는 승용차 안에서 독일에 있는 딸 정유라(20)씨에게 전화해 "엄마, 이제 (검찰에) 출석한다"며 흐느꼈다고 한다. 최씨의 변호사 가운데 이진웅 변호사는 사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