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 한두 해 만에 '귀곡 산장'처럼 변해버렸어요. 이제는 퇴치할 엄두도 안 납니다."

경기 화성시 봉담읍 덕우저수지 일대에는 사람 얼굴만 한 오각형 모양의 '가시박' 잎밖에 안 보였다. 지난 25일 현장 취재에 동행한 야생생물관리협회 화성지회 노기원 사무국장은 "저수지 일대 2000여 평(약 6600㎡) 땅 70%를 가시박이 잠식했다"면서 "인근 식물을 짓밟고 무섭게 성장하는 게 소름끼치고 흉측하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인가(人家) 주변에는 사람 키 두 배가 넘는 버드나무와 아카시아나무가 가시박에 절반 이상 칭칭 감겨 흉물이 돼가고 있었다. 나무 위 전깃줄은 물론 인근 표지판 기둥까지 가시박이 휘감는 바람에 동그란 표지만 간신히 보였다. 마을이 사실상 초토화되다시피 했다.

지난 25일 경기 화성시 봉담읍의 덕우저수지 일대가 생태계 교란 식물인 가시박으로 뒤덮여 있다. 무덤처럼 둥근 부분은 원래 이곳에 살던 버드나무 등이 가시박에 뒤덮여 말라 죽은 뒤 쓰러져 흔적만 남은 것이다. 오른쪽 작은 사진은 가시박이 주변 식물을 용수철처럼 감아 쓰러트리는 모습이다.

30여 년 전 국내에 들여온 가시박이 빠른 속도로 번식하면서 '이대로 방치하면 살아날 식물이 없을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20~30m까지 자라는 가시박은 주변 식물을 감고 오르며 그 위를 덮어 햇빛을 차단해 말려 죽이는 특성 때문에 '식물계 황소개구리'로 불린다. 1980년대 오이과(科)의 대목(臺木)으로 쓰기 위해 북미 대륙에서 도입해 왔으나 뒤늦게 유해성이 드러나면서 지난 2009년에야 생태계교란종(種)으로 지정됐다. 류새한 성균관대 조경학과 교수는 "가시박은 일대를 '식물들의 무덤'으로 만들고, 식물 생태계를 무너뜨리면서 초식동물에게까지 피해를 끼친다"고 말했다.

1일 환경부에 따르면, 2009년 이후 지자체들이 수시로 가시박을 뽑아 없애는 사업을 벌이지만 분포 면적은 오히려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 환경부가 전국 17개 지점에서 가시박 분포 현황 조사를 실시한 결과, 2010년 19만5650㎡이던 가시박 면적이 지난해 27만3400㎡로 오히려 40%가량 증가했다. 가시박 종자는 현재 서울과 춘천, 원주 지역을 포함한 한강권과 팔당권에 이미 군락을 이룬 데 이어 낙동강권은 안동 지역을 중심으로 본류에서 하류 쪽으로 급속도로 번지고 있다. 환경부는 "금강, 영산강, 섬진강권에서도 확산 추세"라고 말했다.

정부와 지자체의 제거 사업에도 가시박이 이처럼 늘어난 것은 무시무시한 번식력 때문이다. 해마다 3~4월 발아해 여름철에 한창 성장한 뒤 10월에 다시 열매를 맺는 가시박은 한 개체가 평균 3000여 개(2500~ 7800개) 종자를 생산하고, 이 가운데 90%가 씨앗을 틔운다. 국립생태원 김남영 연구원은 "하천이 범람이라도 하면 이미 가시박을 퇴치했던 곳이라도 가시박이 또 다시 퍼진다"면서 "이대로 뒀다가는 하천 생태계를 잃어버릴 수 있다"고 말했다.

가시박의 생장(生長)을 고려하지 않은 1차원적인 퇴치 작업도 가시박의 확산을 부추겼다. 야생생물관리협회의 이지선 과장은 "막 떡잎이 자란 4~5월에는 손으로도 뽑아 제거할 수 있는데 지자체 예산 집행 과정이 더뎌 7~9월에야 퇴치 작업이 집중된다"며 "그때는 줄기가 이미 20m까지 자라나 제거하기가 수십 배 힘들다"고 말했다.

가시박을 손이나 도구로 뽑는 방식의 퇴치 작업이 더 이상 통하지 않자 환경부는 일종의 '극약 처방'을 준비하고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농림부와 공동 사업을 벌여 가시박을 화학적·생물학적으로 제거하는 기술을 내년부터 개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변 생태계에 피해가 돌아가더라도 일종의 제초제를 쓸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 예산도 올해 16억원에서 내년엔 36억원으로 배 이상 늘렸다. 올해부터 2018년까지 3년에 걸쳐 전국적으로 대대적인 서식 실태 조사도 병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