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권 자유경제원장·前 한국재정학회장

벌써부터 법인세 인상에 대한 정치권의 담합 소식이 들린다. 주류 경제학에선 국가의 경제성장을 위해 법인세를 인하해야 한다고 가르치지만, 정치권은 주류 이론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법인세 인상이 부자에게 세금을 더 내게 하는 것으로 아는 듯하다. 잘못된 생각이다. 법인세에 대한 국민의 미신이 정치권으로 하여금 법인세 인상이란 주장을 파생시킨다. 법인세에 대한 미신을 깨야 한다.

많은 이가 법인세를 대기업 재벌 가족이 부담하는 세금으로 알고 있다. 이 때문에 법인세를 인상하면, 재벌이 더 높은 세금을 부담하게 된다는 생각에 통쾌함을 느낀다. 그런데 잘못 짚었다. 부자들이 직접 부담하는 세금은 법인세가 아니라 소득세다. 차라리 부자의 소득세 인상을 주장하는 것이 설득력 있다. 하지만 바람직한 생각은 아니다. 부자는 태어날 때부터 부자가 아니다. 그런 사람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젊었을 때 고생해서 자수성가한 부자도 많다는 뜻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궁극적 의미도 열심히 노력해서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나온다.

이제 차분하게 생각해보자. 법인세가 재벌만이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면, 누가 부담하는 것일까. 세금을 연구하는 재정학에선 법인세를 누가 부담하느냐에 대해 연구해 왔다. 지난 50여 년 동안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법인세는 국민 모두가 부담하는 세금이라고 단정한다. 우리가 아는 것과는 차이가 크다.

[[키워드 정보] 법인세란?]

법인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세금을 부담하지 못한다. 결국은 사람이 부담한다. 가능하면 세금을 다른 사람에게 미루려는 게 인간 본성이다. 세금을 다른 사람에게 미룬다면 인상한 법인세는 결국 어디로 갈까. 예를 들어보자. 만약 법인세가 인상된다면, 우선 종업원의 소득이나 복지가 줄어들 것이다. 아울러 소비자들은 더 높은 가격으로 물건을 사게 된다. 또한 기업의 자본수익률이 낮아지므로 기업 자본은 법인세가 낮은 곳으로 이동하여, 결과적으로 전체 자본수익률을 떨어뜨린다. 조세 이론에선 법인세 부담 실체에 대해 단호하게 말한다. 법인세는 재벌이 아닌 국민 모두가 부담하는 세금이다.

법인세가 국민이 부담하는 세금이란 명제를 받아들이면, 이후의 정책 방향은 뚜렷해진다. 일반적으로 세금 기능을 얘기할 때, 소득 재분배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부자가 더 높은 세금을 부담하는 것이 공정한 세금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법인세는 부자가 아닌, 국민이 부담하는 세금이다. 따라서 법인세를 통해 소득 재분배를 강화하자는 주장은 틀렸다. 전 세계 대부분 국가는 단일 세율 법인세제를 채택하고 있다. 기업 이윤이 1억원이든, 100억원이든 같은 세율을 적용하는 것이다. 이는 국민이 부담하는 세금이기에 누진 구조를 적용해도 소득 재분배 효과는 없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우리의 법인세율 구조는 세 단계다. 대기업에 적용되는 최고 한계 세율을 높이는 게 조세정의라는 미신 속에 빠져 있다. 그 결과 상위 1% 기업이 전체 법인 세수의 75%를 부담하고 있다.

전 세계는 법인세 경쟁을 하고 있다. 국가가 잘살기 위해 법인세 인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경제성장은 기업 성장에 따라 결정된다. 기업의 국제 간 경쟁은 국가의 법인세 수준이 좌우한다. 그래서 법인세 인하 경쟁은 재벌들에게 특혜를 주는 것이 아니고, 국가의 경제성장을 위한 것이다. 이론적으로만 보면, 장기적으로 법인세는 없어질 세금이란 주장도 간간이 나온다. 법인세와 경제성장은 한 묶음으로 생각해야 한다. 50여년간 연구한 '신고전 투자 이론(neoclassical investment theory)'이 이를 잘 설명하고 있다.

세계경제의 개방화 이후, 국가의 정책 환경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법인세에 대한 인식은 너무도 미신적이며, 정치권은 이에 편승해 미신을 부추긴다. 전 세계 어디에도 법인세 인상을 얘기하는 국가는 없다. 법인세가 한 국가의 고유 정책 수단이 아니고, 국제 간 흐름에 동참하지 않으면 경제가 퇴보한다는 인식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선 복지 확대란 명분으로 마치 우리가 마음대로 법인세를 인상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인 양 여론을 몰아간다. 전 세계가 법인세 인하 경쟁을 하는 흐름 속에서 한국이 유일하게 법인세를 인상하면, 전 세계 국가가 얼마나 좋아하겠는가. 전 세계는 법인세 인하를 통해 경제를 발전시키려 하는데, 한국은 법인세 인하를 부자에게 감세해 주는 것으로 인식하는 유일한 국가다. 그래서 우리는 '부자 감세'란 선동 구호에 익숙하다. 이런 정치권의 인식과 밀어붙이기 정책 속에서 우리 경제의 미래는 어둡다. 법인세를 인상하는 바보 국가가 되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