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여행-5호선 답십리역

왕십리를 아는 사람은 많지만, 답십리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이곳에 고미술 상가가 밀집해 있다는 사실은 더더욱 알려지지 않았다. 고미술에 관심 있는 이들은 물론, 앤티크한 인테리어 소품을 찾는 이들도 찾아간다. 답십리는 서울 골목 여행의 명소이자 시간여행도 가능한 곳이다.

일러스트 : 마키토이

5호선 답십리역은 왕십리역에서 동쪽으로 세 정거장 떨어진 곳에 있다. 서울지명사전에 따르면 조선 초기에 무학대사가 왕도를 정하려고 도성에서 10리 떨어진 곳을 밟아 지명이 답십리(踏十里)가 되었다고 한다.

답십리를 걷다 보면 무학대사를 따라 아득한 조선왕조를 만나는 듯한 착각이 든다. 역에서 한 블록만 걸어 들어가면 옛 선조들이 쓰던 생활용품이며 놋수저, 정승들의 초상화 등을 모은 ‘고미술상가’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이곳은 1980년대 청계천, 아현동, 충무로, 황학동 등지의 고미술상 140여 곳이 답십리로 모여들면서 생겨났다.

각 상가에 따라 특색 있는 골동품을 판매한다.

골동품은 뼈 골(骨)에 바로잡을 동(董)자를 쓴다. 세월의 뼈를 바로잡는 물건이 바로 골동품이다. 뼈를 고아 진한 맛을 내는 중국의 식재료를 일컫는 말이라는 설도 있다. 어떤 의미든 “옛것을 통해서 현재의 삶을 윤택하게 만든다”는 뜻은 변하지 않는다. 5호선 답십리역 고미술상가는 이런 골동품들의 아지트다. 1,2번 출구에서 동부시장 쪽으로 내려가면 고미술상가 2동, 5동, 6동이 있다. 옛 홍콩 영화에 등장할 법한 허름한 아파트 1층을 쓰고 있는 이 고미술상들은 주상복합형으로 상가를 형성하고 있다.

답십리 고미술 상가는 주상복합형 건물로 1·2층을 쓴다.

상가 1층에는 석상과 목상들이 즐비하다. 야외뿐 아니라 건물의 출입구와 통로에도 시간의 더께를 쓴 물건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반상가에서 썼다는 소반부터, 문짝은 물론 옹기와 놋그릇도 수북하다. 답십리 고미술상가회 주임상 회장은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은 물론, 인테리어 소품을 사러 상가를 찾는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골동품 업계 역시 밀려드는 중국산 골동품의 홍수에 몸살을 앓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골동품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 있기에 아직은 버티고 있다”고 했다.

통로와 복도에도 골동품이 즐비하다.

조선 중기의 물건과 후기의 물건이 다르고, 양반가의 장식장과 평민들이 쓰던 수납장도 품새가 다르다. 어느 시기 누가 쓰던 물건이냐에 따라 물건이 품은 숨결도 다르다. 골동품을 수집하는 이들은 물건뿐 아니라 그 물건이 품은 이야기를 수집하는 것이기도 하다. 밥상을 덮던 무명천 하나에도 당대 아낙의 손때가 묻어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고미술 상가에는 상점이 150여 개가 모여 있습니다. 점포 하나하나가 박물관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의 서신부터 삼국시대의 돌탑도 볼 수 있으니까요.”

간데메 공원으로 들어가는 입구.

답십리역 1번 출구에서 신답육교 교차로를 지나면 간데메 공원이 나온다. ‘간데메’는 전농동에 있던 마을의 옛 이름이다. 1997년 서울시가 공원녹지 확충 5개년 계획으로 공원녹지가 부족한 동대문구 주택 밀집 지역에 조성한 공원이다. 원래는 전매청의 창고 건물이 있던 곳이라고 한다. 규모는 1만 5206㎡(4600평) 정도로 그리 크지 않지만, 다양한 꽃과 나무를 볼 수 있어 주민들이 즐겨 찾는 명소다. 연못이나 팔각정, 장미 아치 등이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다. 답십리역 인근에는 아직 아파트 단지보다는 주택이 더 많다. 주택가 사이 골목에는 한 평 남짓의 열쇠방이나 풍속화가 그려진 갈빗집도 있다. ‘사람 사는 냄새’가 살아 있는 이곳은 공원 관리도 주민들이 직접 한다. 동대문구에서는 공원지킴이 봉사단을 모집해 주2회 공원 순찰을 맡겼다. ‘우리 공원은 우리가 지킨다’는 마을 주민들의 자발적인 선행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늘봄해물찜의 대표 메뉴인 전복해물찜.

점심시간이 지난 한가한 오후에도 홀부터 방까지 손님이 그득하다. 지방에서도 소문을 듣고 찾아온다는 답십리 맛집 ‘늘봄해물찜’이다. 이곳 해물찜의 특징은 아귀, 전복, 낙지, 가리비, 꽃게는 물론 18가지 각종 재료가 들어간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재료는 아침에 공수된다. 주인이 직접 고른 재료는 청주와 레몬즙을 푼 물에 씻어 비린내를 제거한다. 여기에 고춧가루, 밀가루와 함께 마, 율무, 톳, 백년초, 강황, 건새우, 녹차, 표고버섯 등을 갈아 만든 양념을 넣어 쪄 낸다. 늘봄해물찜 입구에는 ‘건강에 좋은 재료만 사용한다’고 적어 놓았다. 한 번 찾은 이들은 단골이 된다는 게 종업원의 귀띔이다.

부부 바리스타가 운영하는 빅터커피.

프랜차이즈의 일률적인 맛에서 벗어나, 주인의 철학이 담긴 핸드드립 커피를 맛보고 싶다면 ‘빅터커피’가 있다. 각기 다른 스승을 사사한 바리스타 부부는, 매일 직접 내린 커피를 손님들에게 대접한다. 이곳이 답십리 명물 커피집으로 떠오른 이유는 직접 만든 빵 때문이다. 커피와 곁들일 때 더욱 풍부한 맛을 내는 마들렌, 다쿠아즈, 스콘, 쿠키 등을 바구니에 넣어 판다. 빅터커피 내부에 있는 식탁과 의자는 답십리 고미술 상가에서 구입한 것들이 많다. 문짝으로 쓰던 골동품을 테이블로 활용하거나, 선반을 의자로 활용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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