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영어 단어 중에 'white elephant'라는 말이 있다. '흰 코끼리'란 뜻인데, 실제 의미는 '돈만 많이 들고 쓸모없는 것'을 뜻한다. 흰 코끼리는 불교 국가에서는 신성시하는 동물이어서 왕이 신하에게 흰 코끼리를 선물로 주곤 했다. 하지만 이를 받은 신하에게는 돈과 노력이 너무 많이 들어가는 고통스러운 짐이었다는 사실에서 이 뜻이 유래한다.

우리나라 경제자유구역, 각종 경제특구가 이 같은 '흰 코끼리' 신세다. 공업입국, 수출이 지상 최대의 과제였던 1970 ~198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 최초의 경제특구인 마산수출자유지역(현재는 마산자유무역지역)은 세계적으로도 성공한 경제특구라는 평가를 받았다. 단위면적당 수출, 외화가득률, 노동생산성에서 경쟁 상대였던 대만의 가오슝 특구보다 훌륭했고, 세계적 명성을 자랑하는 외국계 기업들이 입주하면서 기술 이전, 연구개발 등을 통해 국내 기업의 기술력 향상에도 크게 이바지했다. 그러나 2016년 현재 마산자유무역지역은 한계에 봉착해 있다. 달라진 글로벌 경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낙후한 인프라 탓에 새 시대에 걸맞은 자본 집약적 산업단지로 전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990년대에 들어 외자 유치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외국인투자지역이라는 제도를 만들 때만 해도 경제특구로서의 명분과 공감대가 있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특구는 균형 발전이라는 용어와 함께 정치화되기 시작했다.

1970년대 수출 한국의 기수였던 마산수출자유지역 모습.

[[키워드 정보] 경제자유구역이란?]

정부 부처 공무원들은 글로벌 경제 환경의 변화와 우리 경제의 새로운 성장 동력 확보라는 명분 아래 다양한 콘셉트의 특구를 만들어 냈다. 대표적 사례가 2000년대 초 이후 지정된 경제자유구역, 기업도시, 지역특화발전특구, 새만금특구, 연구개발특구,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등이다. 개별 특구로만 보면 명분도 있고 지정 타당성도 있어 보인다. 그러나 특구 대부분은 입지의 타당성이 결여된 허허벌판 지역에 지정됐고, 새 특구가 지정되면 기존 특구는 정책적으로 소외되는 일이 되풀이됐다.

이런 정책의 결과로 비슷한 콘셉트의 특구가 이름만 다르게 전국에 걸쳐 지정되고 있다. 특구의 확장은 지금도 다양한 형태의 클러스터란 이름으로 지정되고 있다. 문제는 클러스터나 특구의 과잉 지정을 통제하거나 조정할 수 있는 컨트롤 타워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특구는 특구 지정권자가 해당 부처 장관으로 되어 있어 부처와 지자체의 이해관계만 맞으면 특구로 지정될 수 있다. 이로 인한 각종 특구 난립은 국가 예산의 엄청난 낭비를 초래하고 있다.

모든 특구가 다 불필요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시대 변화에 따라 새로운 특구 유형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말 필요한 특구를 위해서 옥석을 가려, 효율적 정책 집행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우선 특구가 남발되지 않도록 국가적 차원의 거버넌스를 만드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시급한 일이다. 특구 및 유사 특구의 지정과 확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정책을 조율할 수 있는 정부 부처 간 협의체를 운영해야 한다. 특구의 탈(脫)정치화를 위해 여러 종류의 특구 및 유사 특구를 과감하게 구조조정하는 일을 누군가 총대를 메고 실행에 옮겨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