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18일에도 송민순 전 장관 회고록의 핵심 쟁점인 "북한 인권결의안에 대한 의견을 북한에 물어봤느냐"는 질문에 직접 해명하지 않았다. 이 문제와 관련된 질문에 더 이상 답변하지 않겠다고 기자들에게 말하기도 했다. 문 전 대표는 측근들에게는 "북한에 의견을 물은 적이 없다"고 의혹을 부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 전 대표 측은 "무대응은 정쟁화를 노리는 의도에 말려들지 않기 위한 것"이라고 했지만, 이런 태도가 의혹을 키운다는 비판도 커지고 있다.

◇文 "문재인이 두려워서 일어나는 일"

문 전 대표는 이날 충북 진천의 한 어린이집에서 "북한에 사후 통보를 한 것이냐, 사전 동의를 구한 것이냐"는 기자들 질문이 이어지자 "그 질문은 안 하기로 했죠(질문을 받지 않겠다는 뜻). 오늘은 여기(어린이집 방문 일정)에 (질문을) 국한해 달라"고 말했다. 문 전 대표는 이후에도 비슷한 질문이 계속되자 "기억이 좋은 분들에게 들으라"고 말했다. 문 전 대표는 오후 충청 주민 간담회에서는 "회고록 논란이 많은데 걱정하지 마시라. 결국 저 문재인이 가장 앞서가니까, 저 문재인이 두려워서 일어나는 일 아니겠느냐"며 "한마디로 군대에도 제대로 갔다 오지 않은 사람들이 무슨 걸핏하면 종북 타령이냐"고 했다. 핵심 사안은 비켜가며 여권의 공세를 '색깔론'으로 규정한 것이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8일 충북 진천군의 한 어린이집을 방문해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문 전 대표는 이날도‘송민순 회고록’과 관련한 의혹에 직접 해명하지 않았다.

[문재인 대응 방식, 더민주서도 논란]

문 전 대표는 회고록 논란이 불거진 이후 주변 참모들에게 "당시 내가 북한에 물어보고 기권 결론을 내린 적이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청와대 연설기록비서관이었던 더민주 김경수 의원의 메모에도 "문 전 대표가 북한 인권결의안에 대해 애초 찬성 입장을 밝혔었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고 한다. 문 전 대표 측은 "당시 관련자들 증언, 메모 등을 통해 99%의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문 전 대표 역시 "당시 회의는 백종천 안보실장이 주재했고, 발언의 대부분은 송민순 외교장관과 이재정 통일부 장관이 했다"며 "왜 송 장관이 나를 이 논란에 끼어들였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도 문 전 대표는 "당시 정황을 보면 내가 기권 의견을 내야 할 것 같은데 당시 참석자들은 초기에 내가 찬성이었다고 하니…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고 말하며 직접 해명에는 소극적이라고 한다. 문 전 대표의 이런 태도에 대해 여권에서는 "결정적 반박 증거가 나오는 것이 두려워 '기억이 안 난다'고 한다"며 비판하고 있지만, 문 전 대표 측은 여전히 "(문 전 대표가) 사안의 전면에 나설 일은 없다"며 무대응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직접 해명할수록 빠져든다"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의 정책보좌관이었던 더민주 홍익표 의원도 본지 통화에서 "인권결의안 관련 회의 내용의 90%는 송민순 장관과 이재정 장관 두 사람의 발언"이라고 했다. 문 전 대표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내가 관여한 게 아니다"라는 뜻이라는 것이다. 문 전 대표 측 핵심 인사도 "비서실장(문 전 대표)은 안보실장 주재 회의에서 의견을 물어보면 답은 했겠지만 힘 있게 주장한 적은 없다"며 "모두 문 전 대표가 했다고 하는 것은 정치 공세"라고 했다.

문 전 대표가 전면에 나서면 어떻게 대응해도 상처를 받는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지난 대선 때 'NLL(북방한계선) 논란'처럼 문 전 대표가 나설수록 진흙탕에 빠진다는 것이 야권의 판단이다. 야권 고위 관계자는 "대선 후보가 나서면 정쟁이 정리되는 게 아니라 더욱 커진다"며 "해명한다고 열심히는 했는데 나중에 보면 정치 공방의 중심에 선 이미지 때문에 국민들은 실망한다"고 했다.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이날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면 현 상황에서 당당했을 것"이라고 했지만, 한 친문(親文)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이 직접 나설수록 반대편의 공세는 더욱 세졌다"고 말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전면에 나서지 않는 문 전 대표의 소극적 태도가 결국 의혹을 증폭시키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더민주 상당수 의원도 "그래도 '기억이 안 난다'고까지 할 필요가 있었느냐"고 했다. 문 전 대표의 '무대응'이 결과적으로 야권에 약이 될지, 독이 될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야당 관계자는 "과거 상황을 설명해 이해를 구하고, 현재 입장에서 북한 인권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는 것이 대선 후보로서 정공법 아니겠느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