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작 서경대 석좌교수

후안 마누엘 산토스 콜롬비아 대통령이 올해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52년간 희생자 22만명을 낸 내전을 끝내기 위해 반군 지도자와 맺은 평화 협상이 비록 국민투표에서 부결됐지만 노력은 인정받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0년 받은 노벨 평화상은 사실 1994년 김영삼 전 대통령이 먼저 받을 기회가 있었다. 1차 북핵 위기였던 1994년 5월 DJ는 아태평화재단 이사장 자격으로 미국 내셔널 프레스 클럽(NPC)에서 한 연설을 통해 미국이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을 북한에 특사로 보내고 YS는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과 정상회담하기를 제의했다. YS의 방북 정상회담이 이뤄졌다면 민주화 운동과 더불어 북핵 위기 해결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평화상을 받았을 것이다. 김일성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남북 정상회담은 무산됐고, 6년 뒤 DJ가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켜 이 상을 받았다.

DJ는 무조건적 통일 지상론자가 아니었다. 그는 민주주의 신봉자였다. 다만 DJ는 남북 평화 체제 정착이 민주주의의 선결 조건이라고 믿었다. 다시 말해 DJ에게 남북 평화는 민주주의로 가는 과정이지 목표가 아니었다. 초점이 조금 벗어나는 얘기를 하자면 DJ는 평화적 민주주의의 꽃인 정권 교체도 지방자치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래서 1990년 노태우 정권 시절 13일간 단식투쟁 끝에 지방자치 제도를 관철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해 DJ가 목숨 걸고 이루려 했던 민주주의와 평화적 정권 교체는 남북 평화가 아니라 우리 국민의 역량으로 이뤄졌다.

박근혜 대통령,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014년 3월25일 오후(현지시각) 미 대사관저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준비 발언에 밝게 웃고 있다.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이란?]

최근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이 출간한 '김대중과 국방'은 '(DJ는) 한반도 평화를 구축하기 위해 북한과 화해 협력 정책을 추진했지만 그러한 정책이 한국의 안보를 위태롭게 하지는 않았다. IMF 경제 위기에도 국방 예산과 국방 전력을 증강했고 한·미 동맹 체제를 긴밀하게 유지하면서 대북 군사적 억지력을 강화해왔다'고 주장했다. DJ 정권에서 고위 장성을 지낸 모 인사가 "DJ는 남북 평화를 추구했지만 국방에 소홀하지 않았다"고 한 말과도 일치한다. 나는 DJ가 생존해 있다면 점증하는 북한의 위협에 맞서 대북 강경 대응을 주문하고 사드 배치를 지지하며 햇볕정책의 대안을 구상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정치권과 정부는 북한의 5차 핵실험, 장거리 미사일 발사,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의 도발에 직면하면서 남북 관계의 지향점을 잃고 헤맨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군의날 기념사에서 북한 주민을 향해 "한국으로 오라"고 선언하자 박지원 국민의당 의원은 북한에 대한 선전포고라고 반발하면서 수해를 입은 북한에 쌀을 보내자고 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사드 배치 잠정 중단과 외교적 노력으로 북핵 완전 폐기, 사드의 국회 인준을 주장한다. 김부겸 의원은 북핵 점진적 폐기, 남북 평화 공존, 미·북 수교, 평화협정을 주장한다. 여당은 사드 배치 찬성, 핵무기 개발, 핵잠수함 개발을 주장한다.

여당은 생각이 없다. 김부겸 의원의 발상은 비현실적이고 위험하다. 문재인 전 대표의 주장은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말로만 들린다. 박지원 의원의 요구는 북한 주민에게 북한을 떠나지 말라고 하는 주문 같다. 박 대통령의 발언은 북한 붕괴가 가까워졌다는 말로 들린다. 이래선 남북 관계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6·25전쟁이 끝나고 63년간 각종 선언과 정책이 난무했지만 결과는 전쟁이 없었다는 것뿐이다. 미국은 핵무기를 가진 북한과 절대로 수교하지 않을 것이고, 김정은은 핵무기를 버리지 않고 무력에 따른 통일 기회만 엿볼 것이다. 중국은 핵을 가진 북한과 독점적 경제 관계의 혜택을 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 평화통일을 말하는 것은 국민을 속이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국민은 평화까지는 몰라도 전쟁 없는 세상을 원한다.

미국의 행보를 보면 우리 정부를 100% 신뢰하는 것 같지 않다. 미국과 신뢰를 쌓는 일이 중요하다. 한·미·일은 북한에 속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를 창설하고 북한을 지원했지만 KEDO는 2006년 1차 핵실험으로 폐쇄됐다. 한·미·일은 새로운 공조 체제를 구성해 북핵 사태에 비협조적인 중국과 도발적 북한을 제어하는 방안을 구상해야 할 것이다. 한·미·일이 공조한다면 핵무기 개발도, 북한의 잠수함을 봉쇄하는 핵잠수함도, 북한의 급작스러운 붕괴 대비도 가능할 것이다. 한·미·일 3국이 공조하면 쿠바가 미국에 항복했듯 북한도 무릎 꿇는 때가 올 것이다. 시간은 우리 편이다. 때를 기다리면서 전쟁 없는 새로운 60년을 만들어 나간다면 우리 국민은 안심하고 살게 될 것이다. 그 후의 60년은 다음 세대가 풀어야 할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