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꿈일 수도, 현실일 수도 있다. 또 때로는 영화는 위로가 된다.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티션 초청작 '너의 이름은'(감독 신카이 마코토)는 '위로의 영화'다.

영화는 언뜻 청춘멜로물로 보인다. 이 영화에 러브스토리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주제를 뛰어넘는 무언가가 있기에 '너의 이름은'은 올해 일본에서 가장 흥행한 작품(흥행 수익 약 1500억원)이 될 수 있었다. 그 무언가는 바로 2011년 3월, 일본에 닥친 거대한 재앙을 향한 위로다.

"2011년 대지진이 일본의 많은 모습을 변화시켰습니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저도 변했고, 관객도 변했습니다. 그때 제가 느꼈던 감정은 '그때 내가 뭔가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것이었습니다. 일본 사람 모두가 그랬을 거예요. 그때의 경험을 통해서 우리가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바람이나 기도, 이런 것들의 결집을 영화에 담고 싶었습니다."

신카이 마코토(43) 감독은 9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 이같이 말하며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를 시작할 때부터 관객이 행복한 마음으로 극장을 나설 수 있는 작품을 하려고 했다"고 했다. 그의 전작들은 대개 해피엔딩이 아니었다. 영화는 도쿄에 사는 남고생 '타키'(카미키 류노스케)와 이토모리라는 시골 마을에 사는 여고생 '미츠하'(카미시라이시 모네)의 이야기다. 어떤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두 사람은 서로의 몸이 바뀌는 경험을 한다. 알 수 없는 소동에 이끌려가던 이들은 이 힘에 어떤 거대한 사건과 인연의 끈이 연결돼 있음을 알고, 이미 벌어진 일들을 되돌리기 위해 서로를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타키와 미츠하는 몸이 바뀌고 일어난 일들을 제대로 어렴풋이 기억한다. 결국 이들은 서로의 이름 또한 제대로 떠올리지 못한다. 아무리 반복해서 외워도 지워지는 이름에 이들은 고통스러워하고 슬퍼한다. 제목 '너의 이름은'은 다시 말해 '너의 이름은…'이다.

신카이 감독은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지만, 잊지 않기 위해 열심히 저항하는 그런 인간을 그리고 싶었다"고 짚었다.

"동일본 대지진은 천 년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하는 일이었죠. 중요한 건 천 년 전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겁니다. 하지만 우린 그걸 잊고 있었어요. 그건 경고였을 수도 있다는 거죠. 물론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압니다. 하지만 이제는 잊지 말아야 한다는 사회적 메시지를 이들의 망각과 망각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에 그려내고 싶었습니다."

신카이 감독은 '늑대아이'(2012) '시간을 달리는 소녀'(2007)을 만든 호소다 마모루 감독과 함께 일본의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을 잇는 재목 또는 후계자로 평가받는다. 이번 기자회견에서도 이와 관련한 질문이 나왔다.

신카이 감독은 이와 관련, "'포스트 미야자키'라는 말을 들을 때도 있는데, 뭔가 쑥쓰러운 과대평가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누구도 도달하지 못한 거대한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그저 나다운 작품을 만들 수 밖에 없다. 14년 동안 애니메이션을 만들었지만, 이건 짧은 시간에 불과하다"고 했다.

'너의 이름은'은 내년 1월 국내 개봉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