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내가 다시 차를 몰고 도로로 나가도 되는 거요?"

지난달 28일 서울의 한 운전면허 시험장. 운전면허 갱신을 위해 적성검사를 받은 김모(83) 할아버지가 2종 운전면허증을 받고서 면허 시험장 직원에게 이렇게 물었다. 김 할아버지는 원래 1종 보통 면허 소지자였지만 이날 면허 갱신을 위한 시력검사에 불합격했다. 1종 보통 면허 합격 기준은 좌우 눈 시력이 각각 0.5 이상인데, 김 할아버지는 안경을 쓰고도 사물이 뿌옇게 보이는 0.3밖에 안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할아버지는 이날 2종 면허를 새로 받았다. 시력 때문에 1종 면허 갱신에 실패한 운전자도 두 눈을 모두 떴을 때(양안) 시력이 0.5를 넘으면 2종 면허로 바꿔 발급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 할아버지의 양안 시력은 운 좋게 0.6이 나왔다. 그는 "도로 표지판 글씨도 잘 안 보이는 내가 면허증 종류만 바꿔서 계속 운전하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지난달 28일 운전면허 갱신을 위해 서울의 한 운전면허시험장을 찾은 고령 운전자가 시력 검사를 받고 있다. 1종 면허를 가진 우리나라 고령 운전자(65세 이상)는 간단한 시력 검사를 하고 질병 보유 여부에 대해 답하는‘자가 진단표’만 제출하면 면허를 갱신할 수 있다.

지난해 치매 초기 판정을 받고 약을 먹고 있는 서모(71)씨도 이날 1종 보통 면허 갱신을 위해 면허 시험장을 찾았다. 서씨는 시력검사를 받은 뒤 '운전하기에 부적합한 질환이 있느냐'고 묻는 서류에 모두 '아니오'라고 적었다. 면허 시험장 직원은 서씨에게 병력(病歷)을 묻지 않고 면허증을 새로 내줬다. 서씨는 "면허를 갱신하러 와서 '운전 못 할 질병을 앓고 있다'라고 적어 낼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며 "병원 진료 기록을 일일이 확인하지 않는 한 내 투병 사실은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1종 면허 적성검사를 받으러 온 다른 고령 운전자들도 대부분 손쉽게 면허를 갱신했다. 대부분 시력검사부터 질병 보유 여부를 묻는 자가 진단표 작성까지 3분 만에 적성검사를 끝냈다.

교통 전문가들은 현행 적성검사 제도가 운전하기 어려운 고령 운전자들을 걸러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도로교통공단 정의석 교수는 "신체검사는 형식적이고, 질병 보유 여부는 고령 운전자 스스로 신고하지 않으면 교통 당국이 전혀 알 수 없다"며 "미국·영국 등 선진국들은 운전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건강하다는 의사 소견서가 없으면 고령자 면허를 갱신해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2종 면허 갱신은 1종 면허보다 훨씬 간단하다. 70세 전까진 시력검사도 안 하고 질병 보유 여부만 적어내면 갱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초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발목이 부러졌던 배모(68)씨는 지난달 지방에 있는 한 면허 시험장에서 2종 면허를 갱신했다. 배씨는 "브레이크나 가속기(액셀)를 밟을 때 발목이 잘 접혔다 펴지지 않지만, 서류에 괜찮다고 써 냈더니 별문제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도 지팡이를 짚고 다닌다.

치매·뇌전증 등으로 6개월 이상 병원에 입원한 기록이 있거나 신체장애가 생긴 고령 운전자들에 대한 관리도 부실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런 병력이 있는 운전자는 '수시 적성검사' 대상으로 분류돼, 건강에 관한 의사 소견서를 제출하고 3개월 안에 다시 적성검사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작년 65세 이상 수시 적성검사 대상자 711명 중 면허가 취소된 고령 운전자는 204명(28.7%)뿐이었다.

65세 이상은 5년마다(65세 미만은 10년) 적성검사를 받는 현행 제도에도 구멍이 있다. 65세 때 적성검사를 받은 사람은 5년 주기로 70세와 75세 때 다시 검사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64세 때 적성검사를 받은 운전자는 74세까지 10년간 적성검사를 받지 않아도 된다. 적성검사를 언제 받았느냐에 따라 10년 가까운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 현재 229만4000여 명 수준인 국내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는 2020년 약 417만5000여 명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공동기획 : 도로교통공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