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개점한 경기 하남시 ‘스타필드 하남’에도 오래된 냉면 명가 ‘의정부 평양면옥’이 입점했다. 그 명성에 걸맞게 많은 사람이 몰렸다.

경기 성남 평양면옥 서금순(60) 대표는 작년 가게 밖에서 점심을 먹는 일이 잦았다. 수시로 찾아오는 백화점 식품음료팀 직원들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백화점 직원들은 냉면과 만두를 주문해 먹은 뒤, 서 대표에게 공손하게 명함을 내밀며 "부디 저희 백화점 식당가에 들어와 달라"고 읍소했다. 서 대표가 "분점을 낼 여력이 없다"고 손사래 쳐도 1~2주 뒤 다시 찾아와 냉면을 먹고 돌아갔다. 몇 번은 회사 임원까지 찾아와 고개를 숙였다. 수십 차례 육탄 공세에 점점 마음을 연 서 대표는 지난 2월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 분점을 열었다.

백화점들이 온갖 공을 들여 전국의 유명 노포(老鋪)를 유치하고 있다. '원조 맛'의 변질을 우려하거나 다른 사람 관리 받는 걸 싫어하는 노포 사장들에게 억대 인테리어를 거저 해주는 등 파격적 조건을 내걸며 설득한다.

최근 경기 하남에 문을 연 쇼핑몰 '스타필드 하남'에는 냉면집 '의정부 평양면옥', 메밀국수 전문점 '광화문 미진', 칼국수집 '소호정' 들이 줄줄이 들어섰다. 하나같이 그간 분점을 내지 않거나 제한적으로 내던 노포다. 백화점들은 나이가 지긋한 노포 사장들을 '인생 선배'로 깍듯이 모시며 인간적으로 다가가는 경우도 많다.

백화점의 점포 유치 담당자들은 입을 모아 "음식 장인(匠人)들의 단단한 자존심을 부드럽게 만들려면 한 점포에 1년 이상 '올인'하는 건 기본"이라고 말한다.

노포들이 백화점 입점에 난색을 보이는 가장 큰 이유는 "간섭받는 게 싫어서"다. 수십년간 자유롭게 영업해 왔는데, 백화점에 들어가면 매일 아침 재료를 검사받고 업장 위생 검사, 종업원 서비스 점검까지 받아야 한다. 바이어들은 이런 불편함을 상쇄할 수 있는 유인책으로 점포 보증금이나 판매 수수료율을 깎고, 에스컬레이터 바로 옆 자리 등 좋은 자리를 주기도 한다.

한 백화점 바이어는 "어떤 노포는 200㎡(약 60평) 크기 업장에 들어가는 인테리어비 3억원을 무상 제공하는 조건으로 입점시켰다"고 말했다. 고유의 맛을 잃을까 봐 우려하는 데에는 가능한 한 원래 쓰던 재료를 유지하고 조리 시설도 많은 부분 재량에 맡기는 식으로 타협을 본다.

작년 9월 영업 60년 경력의 '대선칼국수'를 갤러리아백화점 대전점에 유치한 공승호 바이어는 "백화점 입점의 장점뿐 아니라 단점까지 다 털어놓았던 솔직함과, 가게 방문 때는 음식을 먹고 테이블까지 닦았던 공손함이 사장님 마음을 조금이나마 움직인 것 같다"고 말했다. 2011년 대전 유명 빵집 성심당을 롯데백화점 대전점에 유치한 윤향내 바이어는 "내가 제과 제빵을 전공해 사장님과 빵 트렌드 얘기만 수시간씩 할 수 있었다"며 "딸자식같이 보아주신 게 성공 요인이라면 요인"이라고 말했다. 어떤 바이어는 노포 사장이 허리를 다쳐 입원했을 때 병문안을 가기도 했다. 대(代)를 이어온 노포는 창업주보다 젊고 외국 유학 경험도 있는 자녀 세대가 백화점 입점에 더 적극적이라고 한다. 신세계백화점 박대업 과장은 "바이어 9명이 매일 전국 노포를 누비며 세 끼씩 먹고 있다"며 "백화점과 노포가 '윈윈'하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말했다.